본문 바로가기
기후(녹색)교회 이야기/마을교회 이야기

도심속 기후정의 순례-푸른수목원] 길과 물과 숲,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by 살림(교육센터) 2026. 6. 19.

길과 물과 숲,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 6월 기후중보기도회/ 도심속기후정의 순례, 구로 푸른수목원에서 

 

6월의 햇살이 제법 뜨거운 날, 기후중보기도회는 구로구 항동 일대를 걸었다. 몇 사람은 천왕역에서부터 항동철길을 따라 먼저 걸었다. 녹슨 레일과 자갈, 그 사이로 자라난 풀들은 이 길이 한때 산업과 운반의 길이었음을, 그러나 이제는 느린 걸음과 만남의 길이 되었음을 말해주었다.

 

푸른수목원으로 들어서자 도시의 온도는 조금 달라졌다. 저수지와 습지, 논과 수련, 왜가리와 백로, 나무와 풀들이 한여름의 빛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논 앞에서는 밥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 안에 흙과 물과 햇빛, 농부의 수고와 하나님의 은총이 담겨 있음을 다시 생각했다. 수련과 왜가리 앞에서는 물이 단지 풍경이 아니라 생명을 품는 자리임을 보았다.

 

수목원 곳곳에서 사람들은 멈추어 섰다. 어떤 이는 열매를 바라보고, 어떤 이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뜨거운 햇살 속에서 부채와 모자, 양산과 물병이 자연스럽게 순례의 도구가 되었다. 기후위기는 멀리 있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더위와 그늘의 차이 속에 있었다.

 

이어 더불어숲길로 들어섰다. 숲길에는 신영복 선생의 글귀들이 놓여 있었다. “공부는 망치로 합니다. 갇혀있는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것입니다.”라는 글 앞에서 우리는 공부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굳어진 생각을 깨고 새롭게 살아가는 일임을 생각했다. 노(老) 목수는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올리지 않는다. 먼저 터를 살피고,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운 뒤에야 지붕을 얹는다. 삶도, 신앙도, 생태적 전환도 마찬가지다. 성과를 서두르기보다 우리가 딛고 선 땅을 살피고, 관계의 기초를 다시 놓는 일이 먼저임을 일깨운다. 기후정의의 길도 그렇다. 흙과 물과 사람과 공동체의 관계를 차근차근 다시 세워가는 일이다.

 

신영복 추모공원에서는 둥글게 서서 침묵하고 기도했다. 손을 모으고, 나무 사이에 머물며,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생각했다. 그곳은 한 사람을 추모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묻는 자리였다. 우리는 누구와 연결되어 살아가는가. 우리 교회와 공동체는 누구에게 그늘이 될 수 있는가. 기후정의는 결국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고백이 조용히 마음에 남았다.

 

순례의 끝자락에는 성공회대학교에 이르렀다. 새로 온 이도 함께 자리에 앉아 서로를 소개하고, 오늘 걸은 길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림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 오늘 처음 연결된 사람들, 걷기를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다는 사람, 생태와 교육과 영성의 길을 오래 품어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나눔 중에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고요함의 지혜』 한 대목도 함께 떠올렸다. “나무를 보라. 꽃과 풀을 보라. 당신의 맑은 마음을 그 위에 살며시 올려놓아라. 나무는 얼마나 고요한가. 꽃은 얼마나 생명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자연에서 고요함을 배우라.”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숲의 지혜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숲에서 고요를 떠올렸고, 누군가는 쉼을 말했다. 또 누군가는 다양성, 순환, 연결, 공존을 이야기했다. 숲은 한 가지 목소리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키 큰 나무와 작은 풀, 죽은 잎과 새 생명, 햇빛과 그늘, 물과 흙이 함께 숲을 이룬다. 숲은 우리에게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생명은 혼자 완성되지 않고, 서로 기대고 순환하며 깊어진다는 것을.

 

오늘의 순례는 무엇을 많이 설명하는 시간이기보다, 나무와 물과 길과 사람 앞에 마음을 살며시 올려놓는 시간이었다. 철길은 길의 기억을 들려주었고, 저수지와 논은 물과 밥의 기억을 일깨웠으며, 숲은 관계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나눔은 우리가 홀로 걷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불어 걷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다.

 

오늘의 구로 순례는 이렇게 남았다. 도시는 여전히 뜨겁지만, 그 안에도 그늘은 있었다. 길은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었고, 물은 생명을 품고 있었으며, 숲은 함께 사는 법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다시 연결되었다. 우리는 길의 기억을 잊지 않기로 했다. 물의 소리를 듣기로 했다. 밥 한 그릇의 은총을 기억하기로 했다. 숲의 지혜를 배우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고 기초부터 다시 놓기로 했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시대에, 누군가에게 작은 그늘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