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만나지 못한 너에게 — 미래세대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아가야,
아직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너는 벌써 우리 곁에 와 있구나. 오는 12월이면 너를 품에 안게 된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단다. 오늘의 하늘과 나무, 우리가 쓰는 전기와 버리는 물건까지도 '이것을 너에게 어떻게 건네줄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다시 보게 된단다.
나는 지난 35년간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을 해왔단다.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현실을 알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지. 아이들과 숲길을 걷고, 성도들과 함께 불을 끄고 별을 바라보기도 했으며, 마을 사람들과 우리가 사는 지역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단다. 때로는 강과 숲, 발전소와 쓰레기 처리 현장을 찾아가 그곳의 풍경과 소리를 오래 바라보기도 했고. 요즘은 혼자만의 실천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교회와 마을, 지역사회가 함께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단다.
그러나 아가야,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도 크단다. 네가 살아갈 세상의 여름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뜨거워질까. 마음 놓고 마실 물과 숨 쉴 공기,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날아오는 새들을 너도 누릴 수 있을까. 기후의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이 먼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가 익숙함을 내려놓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으니, 너희 세대가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커지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바꾸지 못하는 현실이란다. 더 나은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이유로 미루고, 그 결과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남기게 되는 일들 말이다.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걸 느낀다. 좋은 뜻을 말하면서도 일상에서는 편리함을 우선했고, 바쁘다는 이유로 중요한 질문들을 지나쳐 온 날들이 많았으니.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희망은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니까. 희망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래도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려는 마음이거든. 작은 실천이라도 이어가고, 혼자서는 어렵더라도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희망이란다. 나는 그동안 숲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 오염되었던 강에 다시 생명이 돌아오는 순간들, 한 사람의 마음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변화를 보아왔거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장면도 기억한단다. 그래서 나는 네게 완성된 세상을 물려주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은 세상을 건네주고 싶다.
네가 태어날 12월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은 너에게 어떤 세상을 남기게 될지, 나의 말과 행동은 너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는 사람이기보다, 더 깊이 듣고 더 신중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숲과 강, 동물과 이웃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교회와 마을이 함께 자연을 돌보는 길을 계속해서 고민하려 한다.
그리고 너에게도 조심스럽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큰 짐을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해. 이 세상의 문제는 너희 세대만의 책임이 아니며, 혼자 해결해야 할 일도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되 자신을 돌보는 일을 잊지 말고, 힘들 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단다. 흙을 만지고, 나무 아래 머물고, 바람과 새소리를 오래 듣는 시간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인간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혹시 훗날 네가 "그때 할머니는 무엇을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구나.
나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침묵만 하지는 않았다. 혼자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네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마음을 다하려 했다고.
아가야,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미래를 기다리는 일과 닮아 있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의 오늘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네가 처음 마주할 바람이 맑기를, 처음 올려다볼 하늘이 푸르기를, 네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다.
내가 너에게 남기고 싶은 가장 큰 것은 많은 것들이 아니다. 생명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 작은 존재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함께라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너를 사랑하며, 너와 모든 미래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2026년, 너를 기다리는 여름에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이자
곧 너를 품에 안을 할머니 유미호가
(이 글은 살림북스터디로 '환경과 함께하는 코칭'을 나누는 중에 미래세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는 실습을 접하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2030 살림비전 함께 이루어가요" : https://ecochrist.campaignus.me/vision
기독교환경교육센터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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