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중보기도회 후기]
빗소리와 물소리 속에서, 평화와 기후정의를 걷다
2026년 8월 | 파주교회–학령산–공릉천–파주시장
8월의 도심 속 기후정의순례는 조금 더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파주의 길을 걸으며 기도해 온 파주교회 평화걷기 순례에 함께했습니다.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걷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심 비 오는 숲과 천변을 걷고 싶었던 터라... 비는, 이번 순례를 이끄는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빗소리를 듣고, 물길을 바라보고, 젖은 숲과 풀을 지나며 우리는 평화와 기후정의를 함께 생각했습니다.
파주교회에서, 길을 나서다
순례의 시작은 파주교회였습니다. 둥글게 둘러앉아 순례자의 기도를 함께 읽고, 오늘 걸을 길과 마음에 품을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산을 펴 들고 빗속으로 나섰습니다.
길을 나선 뒤에는 잠시 말을 줄이고 침묵으로 걸었습니다. 자동차와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있던 빗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물방울과 발밑의 젖은 흙이 느껴졌습니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것들이 하나둘 눈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학령산 숲에서 공릉천으로
파주시청 뒤편 학령산으로 들어서자 비를 머금은 숲의 빛깔이 한층 짙어졌습니다. 나뭇잎과 흙에서는 비 냄새가 올라왔고, 빗방울은 나뭇잎을 두드리며 숲길 곳곳에 작은 물길을 만들었습니다.
학령산을 지나 공릉천으로 향했습니다. 하천과 제방을 따라 걷는 길에는 오래 자란 나무들이 서 있었고, 물가에는 버드나무와 갈대, 억새와 여러 풀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시박과 칡덩굴은 다른 식물을 뒤덮을 만큼 무성했고, 길에서는 연한 자주빛 박주가리꽃과 능소화도 만났습니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의 자리를 밀어내기도 하는 생명들의 모습 앞에서 우리가 말하는 ‘공존’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나만의 자리를 넓혀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이 살아갈 자리도 남겨 두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날은 물소리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이날 순례에서 오래 남은 것은 소리였습니다.
나뭇가지 끝에 모였던 빗물이 커다란 잎 위로 떨어질 때 들리던 후두둑, 토도독 소리. 우산을 두드리던 빗방울 소리. 젖은 낙엽과 흙을 밟을 때 발밑에서 나던 소리. 그리고 비로 불어난 공릉천 물이 쉼 없이 흘러가던 소리.
숲의 물소리와 하천의 물소리는 서로 달랐지만 모두 낮은 곳으로 흘렀습니다.
걷다 보니 물이 보여 주는 길이 있었습니다.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하는 것, 막히면 돌아가고 작은 물줄기들이 만나 더 큰 흐름을 이루는 것. 기후정의를 향한 우리의 걸음도 혼자 앞서가기보다 서로의 작은 걸음을 모아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쪽으로 흐르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단의 흔적 곁에서 평화를 생각하다
공릉천을 따라 걷다 길가에 남아 있는 옛 군사시설, 탱크 진지의 흔적도 만났습니다. 초록의 풀과 나무, 흐르는 물 곁에 놓인 군사시설은 이곳 파주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파주는 생명이 자라는 땅이면서 동시에 분단과 전쟁의 기억을 품은 땅입니다. 그래서 이 길에서 기후정의를 말하는 것은 자연을 잘 보전하자는 이야기만으로 끝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숲과 강과 땅을 파괴하고 막대한 탄소를 배출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힘없는 사람들과 다른 생명들에게 먼저, 더 깊게 닿습니다. 평화와 기후정의는 서로 다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던 자리가 생명을 돌보는 자리가 되기를, 경계와 단절의 땅을 흐르는 물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다시 이어 주기를 마음에 품으며 걸었습니다.
파주시장에 닿아, 함께 밥을 나누다
공릉천을 따라 이어진 순례의 걸음은 파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빗속을 제법 걸은 뒤라 사람들의 말소리와 음식 냄새, 오가는 발걸음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순례는 숲과 강을 걷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오늘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누는 시간까지가 이날의 순례였습니다.
누군가는 빗소리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공릉천의 물길을, 또 누군가는 분단의 흔적과 그 곁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저마다 마음에 남은 장면은 달랐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의 길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순례 내내 우리와 함께했던 비도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에 스며들었습니다. 한 방울은 작고 금세 사라지는 것 같지만, 계속 내린 비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 작은 물길을 만들고 마침내 강으로 흘러갑니다.
우리의 작은 걸음과 기도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전쟁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쪽으로,
더 많이 차지하기보다 함께 살아갈 자리를 내어 주는 쪽으로.
빗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8월의 파주.
파주교회에서 시작해 숲과 공릉천을 지나 시장의 밥상에 둘러앉기까지, 우리는 평화를 걷고 기후정의를 살아내는 길을 함께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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