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 오늘은 한여름 햇살이 남산을 가득 덮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오늘은 꽤 덥겠네요.” 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데 막상 숲으로 들어서니 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숲을 찾았는지 몸이 먼저 알 것 같았다. 햇볕 아래에서는 숨이 차던 걸음이 나무 아래에서는 자연스레 느려졌다. 그늘 하나가 이렇게 고마운 것이었나 싶었다.
북측순환로 입구에서 시작해 한국숲정원과 소나무숲길을 걸었다. 참가자들은 쪽동백 잎을 손끝으로 살짝 쓸어 보기도 하고, 배롱나무 가지를 조심스레 흔들어 꽃잎이 내려앉는 걸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남산 생태습지… 소나무… 아주가…” 누군가는 마치 인사하듯 식물 이름을 낮게 불러 보았다.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잠깐씩 걸음을 멈추고, 숲이 내어주는 숨결에 맞춰 같이 호흡했다.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지나 백범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남산도서관에서부터 이어진 그 길은 단순한 숲길이 아니라, 도시의 기후약자들을 마음에 품고 걷는 기도의 길이었다. 폭염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하는 노인들, 냉방을 마음껏 켤 수 없는 쪽방 주민들,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배달노동자와 이동노동자, 거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웃들, 아이들과 장애인, 그리고 도시의 더위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생명들을 한 사람씩 떠올리며 걸었다. 서울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같은 도시 안에서도 누군가에게 여름은 쉼이 아니라 생존의 계절이라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겼다.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약간 벗어난 그늘에 앉아, 가져온 점심을 나누어 먹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남산의 바람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가운데, 오늘의 길이 각자에게 어떤 말을 걸어왔는지 함께 나누었다. 누군가는 생명 앞에서 지켜야 할 ‘경계’를 떠올렸고, 또 다른 이는 마지막에 뺨을 스치던 바람과 숲의 그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숲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숲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도 이어졌다.
나눔은 자연스럽게 작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나무를 더 심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한 참가자는 다가오는 생일에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약속했다. 거창한 계획보다, 지금 살아가는 도시에서 작은 그늘 하나를 더 만들어 가는 삶이 중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이제 도시로 내려가야 할 시간,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시 올라 도시를 바라보았다. 숲과 도심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는 동자동 쪽방촌을 향했다. 숲에서 받은 쉼을 우리만의 것으로 남겨 두지 않게 해 달라고, 이제는 가장 뜨거운 삶의 자리로 걸어갈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며 둘씩 걸었다.
동자동 그곳에 들어서는 말수를 줄였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주민들의 삶을 함부로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골목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이웃을 보게 하소서.”라는 기도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짧은 걸음이었지만 쉽게 잊히지 않을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숲은 계절마다 묵묵히 자기 그늘을 내어준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기후위기의 시대에 창조세계를 돌본다는 것은 숲을 사랑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가장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이웃을 기억하고, 도시에 작은 그늘 하나를 더 만드는 삶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숲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오늘 남산 순례는 우리 모두에게 숲에서 그늘을 배우고, 이제는 도시의 그늘이 되어 살아가라는 조용한 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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