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안_ 20181030 살림컬럼
정원 (庭園) 속에 깃든 교육적 의미
조은하 / 목원대학교 교수,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지도위원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한 생명 속에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가 모두 담겨있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는 것이 바로 생명의 탄생이다. 한 생명은 자라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희망과 좌절을 인생의 순간순간 마다 경험한다. 기쁨과 슬픔의 교차 속에서 기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절망과 희망의 위기 속에서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을 배워야 한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들의 탄생을 축하하며 나무를 심어주었다. 남자아이에게는 삼나무를 심어주고 여자아이에게는 소나무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나무들을 함께 키워가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무의 모습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연초록이 손을 내미는 3월, 나뭇잎들의 새로운 움틈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첫 번째, 나무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숙연한 신앙고백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 계절에 따라 내리는 햇살, 비, 바람, 공기.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무의 생명을 유지해 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은혜로 주신 것들이며 거저 주신 것들이다. 생명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유한성,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매일의 신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여기서 인생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바로 은혜와 겸손이다. 그리고 희망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척박하다 할 지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은혜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키우며, 그리고 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기다림을 배울 수 있다. 나무가 자라는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아무리 거름을 하루 밤사이에 많이 준다 하여도 하루 아침에 나무가 훌쩍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과한 거름은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한다. 쏟아 붓는 홍수처럼 물을 하루아침에 많이 주면 그 나무를 썩고 만다. 나무가 온전히 자라는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기다림이다. 같은 나무 안에서도 꽃이 필 때 서로 피어나는 시간이 다르듯 같이 심고 가꾼 나무라 할 지라도 자라는 속도는 모두 다르다. 자기만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자기만의 꽃을 피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다림을 배운 자만이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구원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모든 것이 초고속의 시대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있다. 남보다 뒤질까 속도가 느릴까 조바심하며 경쟁과 비교 속에서 스스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 번째,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절제와 단순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다. 나무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하여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아깝고 아프지만 스스로 무성한 가지들을 잘라낼 수 있는 절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배우는 것은 이렇듯 심오한 삶과 신앙의 가치들이다. 이렇게 하여 키운 나무들을 결혼식 날 가지치기를 한다. 신랑의 나뭇가지와 신부의 나뭇가지를 둥글게 엮어서 신혼의 첫날 밤, 독립하여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첫 걸음에 신방에 걸어준다. 신랑의 자라온 삶의 역사와 신부의 삶의 역사가 만나는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삶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키워주신 부모님의 사랑, 이웃들의 관심들이 녹아져 있는 것이 바로 아이의 탄생과 함께 자라온 나뭇가지 속에 머금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신혼 첫날밤 바라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가정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신앙의 유산, 거룩한 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유산은 바로 그들의 출산과 함께 가정과 마을이 함께 만들어온 거룩한 신앙의 고백이며, 살아낸 시간의 증거이며, 여전히 미래를 향해 자라고 있을 희망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나무 한그루에 이렇듯 중요한 신앙의 가치가 숨어있다. 그렇기에 꽃과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의 의미들을 이토록 아름답게 가꾸고 키우는 일인 것이다(이 글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이 주최한 ‘교회정원숲 워크숍’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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