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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이야기

햇빛과 달빛을 받아 익은 온갖 곡식과 과실 들꽃들 앞에서

by 살림(교육센터) 2018. 12. 29.

201810_살림컬럼

 

햇빛과 달빛을 받아 익은 온갖 곡식과 과실 들꽃들 앞에서

 

10월부터는 정리의 계절입니다. 새롭게 시작할 때가 아니라 올해를 잘 마무리 하고, 겨울을 위해 잘 갈무리해 나가야하는 때입니다. 위의 몸은 가을과 겨울에 잘 쉬고 마무리를 잘 해야 다음해 여름을 잘 넘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작년 가을에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올해 여름을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둡니다. 가장 뜨거운 7,8월에 얼굴에 알레르기가 극에 달했습니다. 알레르기로 뿔이 잔뜩 난 얼굴을 감싸 쥐고, 아낙네는 하늘을 향해 무성하게 뻗어가는 풀들을 방 안에서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러보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올해 봄에 심은 작물들이 중력을 거스르고 무섭게 뻗어가는 풀더미 속에 모두 갇히고 바람과 햇볕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루하게 여름 내내 내리던 빗속에 도대체 가을이 오기는 올까하는 깊은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을 지나 지난 9월은 모든 만물들이 행복할 만큼 날씨가 좋았습니다. 들판과 산골짝에 핀 갖가지 들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들꽃들이 다양했나 싶을 정도로 해마다 새롭게 들꽃들이 많이 보입니다. 너무나 작아서 손가락으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작고 예쁜 들꽃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 주님의 얼굴이 보입니다.

남정네와 아낙네가 심은 작물들보다 커져버린 풀들을 열심히 베어주니, 바람과 햇볕을 맘껏 즐긴 작물들이 뿌리를 더 내리고 열매들이 풍성하게 영글어갑니다. 정말 잘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고추가 비에 다 녹아내리고 병들어 땅에 곤두박질해서 염려한 대로 고추 값이 너무나 올라버렸습니다.

참깨를 베어서 비를 피해가며 잘 말려서 털었습니다. 검정깨 흰깨, 그 작은 알갱이들을 소복하게 받아놓고 보니, 고난의 길을 뚫고 남정네와 아낙네의 품으로 들어온 소중한 자식 같았습니다. 흑임자 검정깨는 검정콩과 흑미를 섞어서 미숫가루를 만들어 먹고, 흰깨는 고소하게 잘 볶아서 갖은 양념으로 쓰겠지요? 땅콩을 캐보니 두더지가 절반은 먹고, 절반은 남겨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작년에 심었던 터미네이터 땅콩 씨앗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면 비록 절반은 두더지의 밥이 되어버렸지만 나머지 절반이라도 토종 땅콩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땅콩은 다 먹어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 해두었다가 내년 봄에 또 심어서 토종 땅콩 씨앗을 잘 살려나가야겠습니다.

작년엔 고라니가 콩잎을 다 뜯어 먹어서 콩 농사가 폭삭 망했지만, 올해는 울타리를 단단히 잘 쳤으니,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금산군 기술센터에서 콩 심는 기계를 빌려다가 돌돌돌 손으로 굴려가며, 그 넓은 땅에 콩을 순식간에 재미있게 심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알레르기 때문에 풀을 잘 매주지 못해서 또, 콩 농사가 어찌될지 참 한심합니다.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이지만 만물을 잘 돌보라고 맡겨주신 이 청지기가 시원찮아서 만물도 탄식하고 청지기도 주님 앞에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배춧잎이 많이 자랐습니다. 무 싹도 많이 올라와 아낌없이 솎아내어서 강된장으로 쓱싹 비벼먹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시댁식구들이 올라와 같이 배추벌레도 잡고, 우엉도 캐려고 합니다. 험난한 여름을 잘 견뎌낸 씩씩한 우엉입니다. 우엉은 조려서 김밥에 듬뿍 넣어서 먹고, 잘게 썰어서 볶아 먹고, 말려서 우엉 가루로 만들어 갖가지 음식에 넣어 먹고, 일 년 내내 두고두고 먹으면 좋은 착한 아이에요.

얼마가 되든 다음 달에 콩을 추수하고 나면 푹 삶아서 메주를 만들어 된장 담글 준비를 해야하니다. 올해는 고추 양이 적어서 작년에 남겨둔 고루가추로 고추장을 만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직접 키운 콩으로 하든 아니든 매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그고, 재래식 간장으로 맛간장을 만들고, 엿기름으로 엿을 고아서 고추장을 만드는 주님의 청지기들이 늘어나길 소망해봅니다.

 

땅과 그 안에 가득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시편 24:1)

 

요셉지파를 두고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땅에 복을 내리실 것이다. 위에서는 하늘의 보물 이슬이 내리고, 아래에서는 지하의 샘물이 솟아오른다. 햇빛을 받아 익은 온갖 곡식과, 달빛을 받아 자라나는 온갖 과실이, 그들의 땅에 풍성할 것이다. 태고적부터 있는 언덕은 아주 좋은 과일로 뒤덮일 것이다. 불타는 떨기나누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주님, 선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땅에 복을 베푸시니, 그 땅이 온갖 좋은 산물로 가득할 것이다.”(신명기 33:13~16)

 

햇빛과 달빛을 받아 익은 온갖 곡식과 과실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주님이 이 땋에 베푸시는 복이라는 말씀이 진짜로 와 닿습니다. 시멘트 벽 속에 갇혀 지낼 때는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주님이 베푸시는 복이 실감이 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글쓴이 김귀한 님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살림코디네이터로 대전산성교회 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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