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3_기독교세계 10월호 (過猶不及, 탐욕의 시대에서) - 조혜정기자, 박영신부장
<너무 버린다>
‘플라스틱 쓰레기 없는 살림’을 향해 한 걸음
-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를 중심으로
유미호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
쓰고 버리는 시대
오늘 우리는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풍요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 가지 이익이 있으면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손해가 뒤따른다. 사실 세상이 풍요한 탓에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은 누구랄 것도 없이 소비하면서 남겨놓은 흔적들이다.
한 세대 이전만 해도 흔적 없이 소비했는데, 이제는 흔적 없이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는 소비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쓰고 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끝없이 올라오는 욕심을 과시하듯 이런 저런 물품을 사서 버리기를 즐긴다. 오죽하면 나무 이름 10가지를 몰라도 기업 로고 100가지 이상 아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때론 곧 다시 내다 버리고 말 물건인데도 사들인다. 시장에 가보면 쓰레기통을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가져가는 이들이 종종 있다. 분명 쓰레기통을 꺼낸 후 쓰레기로 버릴 봉지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일회용 쓰레기 문제가 날로 심각해진다. 특히 1회용 플라스틱은 사용이 편리한 데다 배달 문화가 발달되어 매년 버려지는 양이 증가하고 있다. 비닐봉투는 만드는데 1초, 사용하는데 기껏해야 단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한 사람이 연간 쓰는 비닐봉투 사용량은 420장이나 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1.13장 꼴로 사용하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1인당 연간 비닐봉투 사용량이 198장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고, 핀란드는 단 4장에 불과하단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쓰는 1회용 플라스틱 컵은 500개나 된다. 모두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고, 분해되는데 최소 500년은 걸리는 데 말이다.
게다가 이들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800만 톤이나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2050년이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로 인해 바다 생명들은 플라스틱에 몸이 감겨 고통을 받고, 먹이인 줄 알고 먹었다가 소화시키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빨대 등 작은 플라스틱은 더 잘게 분해되어 미세플라스틱으로 물고기들을 거쳐 우리 밥상에 올라오고 있다.
일회용이거나 필요 이상의 소비
쓰레기 문제는 1회용 플라스틱 제품만의 문제는 아니다. 플라스틱 1회용 컵이나 접시 등과 같이 사용 억제 및 무상제공이 금지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빨대와 홀더, 종이 컵과 티슈, 이쑤시개와 같이 규제되고 있지 않는 1회용들도 많다. 게다가 물건의 수명과 상관없이 버려지는 것들까지 친다면 그냥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 다회용으로 만들어진 제품들마저도 새것이거나 한두 번 사용된 채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물건이 너무 저렴하게 팔리고 있어 집집마다 상품들이 쌓여간다. 옷들도 일회용품 같이 쓰다가 버리는 세상이 되었다. ‘쓰고 버리는 대량소비, 대량생산의 사회’가 된 것이다. 이대로는 쓰레기 문제는 물론이고,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데 큰일이다. 물건의 수명을 늘릴 뿐 아니라,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면 버려지는 쓰레기는 대략 세 가지다. ‘필요’하지만 일회용이거나 오래 쓰기 힘든 것(싼 게 비지떡), ‘필요’한 것을 사는데 끼어져 오는 것(과대포장), ‘필요’하지도 않은데 욕심으로 구입한 것으로 다른 이에겐 쓸모가 있는 것(잉여물품).
문제의 핵심은 ‘필요’다. 자신의 필요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정작 알아도 필요까지만 채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대량 생산과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의 생생한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에 도전장을 낸 가족이 있으니, ‘나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양철북)’라고 말하고 책임 있게 실천한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가족이다. 이들은 ‘플라스틱 행성’이란 영화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다소 무모해 보이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한다. 지구에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있는지, 그 플라스틱으로 인해 지구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이 괴로워하다가 죽어가고 있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플라스틱 없이 살기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그 막막함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필자도 올해 27년째 기독교환경운동의 길을 걷는 동안 몇 차례 붙잡았다가 이내 내려놓았던, 가장 어려운 환경선교 과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닐 플라스틱 문제였다.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어 ‘없이 살아보게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생태적 관점에서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해도 그 의지와 상관없이 불합리에 빠질 위험이 가장 커 보였다.
플라스틱 쓰레기에 맞선 가족의 유쾌한 반란
그러나 산드라 가족은 달랐다. 비닐봉투와 페트병 정도 안 쓰면 되겠지 생각했던 결심이, 집안 가득 쌓여있던 플라스틱 제품과, 친환경 제품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것이 비닐포장제품이고, 유리나 스테인리스 그릇조차 뚜껑은 플라스틱인 것을 알았을 때는 포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힘든 면도 있었지만 손수 살림을 하면서 플라스틱을 줄였고 알맞은 것들을 찾아 적절히 사용했다.
때론 곁에 있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기에 더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네 말이 맞다. 요샌 정말 쓸데없는 게 참 많다. 포장이 다 뭐냐, 죄다 그냥 팔았지.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았는데 말이다.” 옛날의 삶에 힌트가 있음을 알려주신 시어머니의 말씀이다. 사실 전통 농경사회 때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어떠한 것도 과도하게 만드는 경우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 이전엔 무엇이든 아껴 썼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썼다. 산업화 이후 ‘버려도 괜찮은’ 것들이 나왔고 우리는 지금 버려도 상관없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최대한 버리지 않던 이야긴 이제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다. 시중에 일회용품이 처음 나왔던 때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아 업체들이 당황했던 이야기.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비문화를 위해 온갖 노력을 했었단다. 안타깝게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선 그때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지 포장이 종이냐, 비닐이냐 하는 게 문제가 아냐. 그런 물건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생활방식의 문제다” 친구의 조언으로 볼 때, 이들의 2년간의 실험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단지 자신들 앞에서 플라스틱을 치우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고, 시큰둥해 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건강과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며 바뀌게 했다. 한 가족의 플라스틱프리를 향한 날개 짓이 처음엔 다섯 명이 일으킨 바람이었지만, 지금 그에 자극받은 사람들마다 적잖은 플라스틱 거부물결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운 ‘살림’살이를 위하여
플라스틱프리, Plastic-free.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큰 ‘살림’ 실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나는 새들과 바다 생명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왜냐하면 플라스틱은 신앙적으로 볼 때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창 3:19)’ 생명의 순환과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사는 것(요 10:10)’을 가로막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재활용되는 것이니까 분리배출하면 되지’ 하면서 계속 쓴다면 ‘필요’ 이상의 것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한’ 것을 탐하는 것으로, 우리는 물론 지구를 더 심한 고통 중에 신음하게 할 것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지구는 2035년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을 것이란다. 2015년 말 전 세계가 합의했던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겠다고 한 목표는 무산될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란다.
간신히 버텨낸 여름 폭염 때문인지 하나뿐인 지구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 내몰렸음을 직감한다. 에너지, 식량, 물, 물자 등 모든 것을 끊임없이 소비해서 버리려고 하는 소비중독증, ‘어플루엔자(Afluenza - 풍요를 뜻하는 'Affluent'와 감기 바이러스를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 신조어) 때문이다.
시급히 치료해야 한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는 늦는다. 완전한 치료가 아니어도 된다. 조금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조금 내려놓으면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에 다가설 수 있다.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물질에 대한 욕망이 너무 크다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신 말씀을 기억하고 사랑으로 조금 덜어내자. 그저 쓰레기일 뿐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는 낡은 물건이 있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관심을 두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다시 관심을 주고 사용해보자. 그러다보면 자연치유력이 높아져 진정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에 옷을 걸쳤고 지붕이 있어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세상 75%의 사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국일미디어)
“무엇이 얼마나 주어져야 충분하다고 할까?” 한 동안, 아니 이번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해결의 열쇠는 ‘필요를 알게 하는 것’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문이 잘못되었다. 필요를 제한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물어야 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답을 내게 하면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대형 승용차가 아니라 존중이, 옷이 가득한 옷장이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자 장비가 아니라 인생을 가치 있게 할 그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체성, 일체감, 공동체, 도전, 인정, 사랑, 즐거움. 마음과 영혼의 풍요로움 등을 말한다.
일단 한 번 시작해보자.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냥 길을 떠나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더구나 목적이 하나님 지으신 모든 생명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볼 수 있으리라.
기독교환경교육센터‘살림’(https://eco-christ.tistory.com)을 통해 올해 초부터 걷기 시작한 플라스틱프리의 길. 조금 불편해도 천천히 걸으며 만나는 생명들마다 이름을 부르며, 그 길 위에서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나누기를 원한다. 1회용부터 하나씩 줄이고, 작은 정원(텃밭)을 가꾸며 ‘살림’을 위한 마음을 키워가 보리라. 그곳에서 식물의 이름을 10가지 이상씩 알게 하는 것,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이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것은 지구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리라. 이는 지구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을 깨달아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게 할 것이다.
다행히 지난 번 플라스틱대란을 겪으면서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면서 고통을 느끼는 이들도 늘고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회복으로 가는 좋은 신호이다. 설령 지금 1회용 플라스틱을 쓰고 있더라도 ‘내 자신이 쓰고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고, 1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우리는 머잖아 다른 삶을 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필요하지 않은 것을 찾아 서서히 이별을 연습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꼭 필요한 것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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