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사람을 만나다 ① 버려진 것들 앞에서 다시 묻다
김신영 박사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부소장

살림과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창조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살림과 어떤 꿈을 함께 꾸고 있는지를 한 사람씩 만나 들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최근 미국 드류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신영 박사입니다. 김 박사는 지난 5년 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신학적 쓰레기학(Theological Garbology)’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유학 중에도 살림의 온라인 그린스쿨을 이끌고, 제주CBS와 함께 ‘지구돌봄 프로젝트’ 방송을 진행하며 멀리서도 살림의 길을 이어왔습니다.
지난 8월 1일, 온라인 그린스쿨 수료자들과의 홈커밍 자리에서 ‘무엇이 쓰레기인가’, ‘누가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결정하는가’, ‘버려진 것은 정말 사라지는가’를 질문하며 신학과 환경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나누었습니다. 귀국 후 다시 살림의 현장에 선 김신영 박사에게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묻습니다.
1. 먼저,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년 간 미국 생활과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살림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든 마음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본격적으로 환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때가 2010년 즈음입니다. 그 전에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같은 용어들을 피상적으로 듣기만 했을 뿐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2010년 이후로는 대중적으로 에너지 전환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고, 이와 관련된 기독교 단체들의 등장과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고, 수많은 데이터는 지구의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계속 던져주고 있는 데 반해 환경에 대한 기독교계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작아진 것 같습니다. 교회 차원, 기독교환경운동 단체 차원, 그리고 기독교환경운동가의 차원에서 다르게 접근해야 하겠지만 여전히 한국 기독교는 기후변화나 에너지 전환과 같은 시급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현안과 교회의 상황들을 조화롭게 조율하며 시민사회와 교회를 넘나들고 이들을 연결하는 훌륭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자료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기독교환경교육에 대한 자료는 매우 희소합니다. 다양한 연령대, 서로 다른 지역의 문화, 각양각색의 신앙적 성향을 고려할 때, 기독교환경교육은 그 중요성에 비해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놀랐던 것은 몇몇 한인교회에서 환경주일, 탄소금식 등의 프로그램을 할 때 살림에서 제작하고 배부한 자료집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살림 안에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살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돌보고 살리는 사역의 영역을 심화하고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독교환경교육의 장이자 플랫폼으로서 살림이 맡고 있는 사명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 박사논문의 주제가 ‘신학적 쓰레기학’입니다.
처음 들으면 조금 낯설기도 하고 궁금해지는 말입니다. 왜 쓰레기를 신학의 질문으로 다루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환경사회학과 정치생태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또 에너지 정책에 대한 주민수용성 같은 주제를 연구할 때에는 늘 현장을 다녔습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제 지도교수님이었던 윤순진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연구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눈과 귀, 손과 발을 이용해 공부하고 글을 쓰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저는 탈핵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한빛 원전과 월성 원전 주변을 많이 다녔습니다. 핵발전소 안에도 가보고 직원들도 만나보고, 또 지역주민들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연구보고서와 책에서 보고 들을 수 없던 새로운 세상이 현장에 있다는 것을 몸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가서 생태신학을 공부하면서 보니까 제가 다시 책과 논문들 사이에 파묻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부할 양도 너무 많고, 언어의 장벽도 있고, 무엇보다 신학 공부를 하다보니 현장 연구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동안 제가 해온 공부는 현장과 분리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주제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생태신학의 물질적인 주제는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중에서 쓰레기를 선택했습니다. 먼저 제가 살던 뉴저지 매디슨이라는 곳은 하늘에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맑고, 밤에는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캠퍼스 안에는 여우, 너구리, 사슴이 돌아다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맑고 깨끗한 동네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었습니다. 분리배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키보다 훨씬 높은 대형 쓰레기 수거함 덤스터(Dumpster)는 매일 새벽 주민들이 잠든 사이에 비워졌습니다. 이 지역에서 배출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이런 식으로 매일 사라져버리는데, 동시에 제가 사는 지역은 이토록 깨끗하다는 게 굉장히 괴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먹거리나 물건을 구입할 때, 제조 성분이나 원산지를 꼼꼼히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고 신뢰할 만한 것인지 판단합니다. 그런데 물건을 버릴 때는 이 물건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생산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생산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만, 내가 버린 폐기물을 어디에서 처리하는지 그리고 누가 처리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은 무언가를 뒤에 남깁니다. 현대 사회에는 이것이 쓰레기의 형태로 가장 많이 드러납니다. 집에서 배출하는 생활쓰레기나 음식물쓰레기처럼 눈에 보이는 잔여물도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에너지를 사용할 때에 우리는 탄소를 남깁니다. 뿐만 아닙니다. 해외에서 오는 상품과 먹거리는 생산 과정뿐 아니라 포장 및 유통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순간뿐 아니라, 석유, 석탄, 천연가스, 우라늄 등의 자원을 채굴하고 연료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거주 불가능한 곳으로 지정되는 지역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생명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연료는 찌꺼기를 만듭니다. 탄소만 배출되는 게 아닙니다. 석탄재, 사용후핵연료 등도 꽤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 쓰레기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잘 모르니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는 결국 쓰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쓰레기는 매일 우리 눈 앞에서, 우리 집 앞에서 깨끗하게 치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쓰레기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쓰레기야말로 현장에 대한 중요성과 신학적 분석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주제라고 여기게 되었고, 쓰레기를 생태신학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3. 지난 모임에서 “쓰레기는 단순히 버려진 물건이 아니라 문화적·정치적·종교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분리배출을 잘하자’는 접근과 ‘신학적 쓰레기학’은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 일상의 사례 하나를 들어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분리배출은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분리배출과 수거가 잘 이루어지는 사례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분리배출을 한다고 해서 가정에서 배출되는 전체 쓰레기 양이 매년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전체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분리배출은 주로 가정이나 사무실, 공공시설처럼 일상과 밀접한 부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쓰레기는 우리의 일상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수많은 과정들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분리배출이지만, 우리는 그 너머까지 사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학적 쓰레기학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분리배출을 할 때, 우리는 종이, 비닐, 플라스틱, 음식물 등을 분류해서 배출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합니다. 그리고 도덕적, 환경적 의무를 다했다는 안도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쓰레기는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수많은 과정과 그 너머에서도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까지 신경 써야 할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하기에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어렵고 복잡합니다.
이처럼 어떤 쓰레기에 대한 정보는 매우 세분화되어 있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어떤 쓰레기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고 통제되어 있습니다. 또 사회에 따라 어떤 쓰레기는 위험하고 접근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어떤 사회에서는 잠재적인 자원으로서 경제적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쓰레기에 대한 정확한 구분은 불가능합니다. 깨끗함과 더러움, 쾌적함과 불쾌함, 안전과 위험의 경계는 매우 모호합니다. 이 경계는 사회, 문화, 정치, 종교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이 방치해 둔 것처럼 거실에 오래 굴러다니던 장난감이 있길래 그것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 둘이 그것은 매우 소중하고 아끼는 장난감이라는 것입니다. 제 눈에는 쓰레기였고, 아이들의 눈에는 여전히 소중한 장난감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그 장난감을 버리자고 말했고, 저 장난감을 버리지 않으면 다음부터 다른 장난감을 사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그 장난감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이 장난감이 “쓰레기”로 규정된 데에는 아빠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즉 무엇인가가 쓰레기로 규정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어떤 권력이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더럽고, 위험하고, 불쾌하고, 가치 없는 쓰레기로 여기고 있다면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도록 하는 어떤 권력이나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분리배출을 잘하자’는 접근과 ‘신학적 쓰레기학’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주셨는데요. 반대로 왜 우리는 “쓰레기”라고 하면 “분리배출”부터 생각이 나는지, 이 사고의 연결은 왜 생긴 것인지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학적 쓰레기학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우리에게는 은폐되거나 왜곡되어 왔던 쓰레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찾아내고 여기에 작동하고 있던 권력과 욕망들을 정치신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입니다.
4. 연구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오래 남은 ‘버려진 것’이 있었나요?
모임 속에서 핵폐기물이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일 수도 있고, 기후난민이나 폐기물 노동자, 어떤 장소나 생명, 기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것이 왜 마음에 남았는지도 궁금합니다.
경제발전이나 국가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혹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온 존재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 동물, 지역, 물질 등이 다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은데요. 예를 들어 어떤 존재가 위험하거나 더러운 것으로 규정되면 그것과 관련된 존재들도 같은 범주에 포함되는 일이 많습니다. 예방적 살처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특정 감염병에 걸린 동물이 발견되면 반경 500미터 혹은 3킬로미터 등으로 설정된 방역대 안에 있는 가축들은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2021-2025년에 살처분된 가축이 5446만 마리라고 합니다. 지난 겨울 우리나라에서는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산란계 1134만 마리가 살처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죽음들이 우리에게는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고깃값이나 달걀값의 인상과 같은 돈의 문제로밖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수 천 만의 생명을 죽이는 일에 동원되는 사람들, 죽임 당한 동물들이 매몰되는 땅, 그리고 그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누가 이 많은 생명들을 살처분 해도 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일까요? 이외에도 현재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이처럼 폐기가능한 것으로 규정되고 처분되는 존재들이 우리 사회에서 도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존재들은 우리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망각되도록 체계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5. ‘버려짐’을 바라보는 일은 신앙과도 깊이 연결되는 것이지요.
쓰레기를 연구하면서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을 이전과 다르게 읽게 된 부분이 있나요? 특히 오늘의 교회가 창조세계와 ‘버려진 존재들’을 바라볼 때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신앙의 언어나 태도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전통적으로 창조 이야기를 다룰 때, 창세기 1장 1절에서 바로 3절의 “빛이 생겨라”는 명령으로 도약하며, 2절에 등장하는 혼돈, 공허, 깊음(Tehom)과 같은 것들은 지배되고 정복되어야 하는 무질서이자 악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캐서린 켈러의 저서 Face of the Deep으로부터 이 깊음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받아들여 이를 신학적 쓰레기학과 연결해보고자 했습니다. 켈러에 따르면, 창조는 하나님이 혼돈, 공허, 깊음을 강압적으로 정복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깊음의 카오스 안에 잠재되어 있던 풍성한 관계적 가능성들을 사랑으로 이끌어내시고 호명하시는 대화적 협력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신학적 전통들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창세기 1장 2절의 다른 해석들이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등장한 데에는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이유와 공헌이 있습니다. 한편, 기후변화와 쓰레기로 인한 위기가 등장한 지금은 깊음으로부터의 창조라는 해석이 우리게 새로운 생태적 성서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더럽고, 위험하고, 불쾌하게 여겨지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제거하고 우리 기억에서 지워야 할 것으로 여기기 이전에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규정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존재들을 없애고 지우고 잊는다고 해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유학 중에도 온라인 그린스쿨과 제주CBS ‘지구돌봄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오셨습니다.
공부와 연구로 바쁜 시간 속에서도 환경교육 현장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이 연구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온라인 그린스쿨을 계속 진행하고 지구돌봄프로젝트도 거의 2년 가까이 진행했는데요. 온라인 그린스쿨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린스쿨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앞으로 살림이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다음 20년, 30년을 준비해야 할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지구돌봄 프로젝트에서는 매주 다른 환경 이슈를 10분씩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30번 정도 진행한 이후로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진행해야 할지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환경에 대한 제 관심사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송을 진행하면서 기존에 잘 모르던 환경 이슈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세계적으로 어떤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지를 계속 추적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세계의 모든 현장에 갈 수는 없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계속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7. 이제 살림 부소장으로 다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앞으로 살림에서 특별히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학적 쓰레기학’이 교회와 환경교육 현장에서 어떤 프로그램이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분리배출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특화되고, 전문화된 지식과 실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범위에 있는 쓰레기와 쓰레기로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한 발견과 이에 대한 신앙적 숙고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태적 회심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생각을 막던 것들을 벗겨내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눈과 생각을 가리고 있는 구조만 탓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구조에 익숙해져 버린 채, 우리의 욕구에 충실하며, 불편한 책임감에 대해 외면하려고 해 온 우리의 모습도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환경교육이 기독교 신앙 및 기독교 사회윤리와 잘 연결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구성될 것 같습니다.
8. 살림은 사람들의 ‘작은 실천’을 소중히 여겨 왔습니다.
요즘 김 박사님이 자신의 일상에서 특별히 의식하며 실천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주 작고 소박한 것이어도 좋습니다.
저는 나무를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무껍질은 신비합니다. 표면은 딱딱하고 거칠고 죽어있는 것 같지만 열심히 탄소를 흡수하면서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저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나무를 만지지만, 나무가 저를 만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돌봄은 상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무를 만질 때, 나무와 제가 서로 돌보는 것을 발견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사이에 구성되는 돌봄의 관계를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9. 마지막으로 살림 소식지를 읽는 후원자와 동역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창조세계를 돌보기 위해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한 가지 질문이나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상에 쓰레기로 태어난 것은 없습니다.
10. 다음 질문에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으로 답해주세요
- 요즘 자주 바라보는 자연은? (나무)
- 요즘 마음에 머무는 성경 한 구절은? (요한계시록 22장 2절)
- 최근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 책 한 권은? (물건 이야기, 애니 레너드)
- 살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살림은 평화의 다른 이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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