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놀이마당. 아침 공기가 참 좋아 딱 좋은 봄 날 지구의 날 행사를 한다 싶었다. 그런데 웬 걸. 4월인데도 햇살은 한여름처럼 직선으로 내려 꽂혔고, 바람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자 챙을 누르며 걸었지만, 얼굴엔 ‘봄소풍’ 같은 표정이 묻어났다. 가족 단위의 방문객, 친구끼리 나온 청년들,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춘 이들까지 - 누구나 오늘만큼은 광장이 ‘행사장’이 아니라 ‘약속을 맺는 마당’이 되었길 바래본다.
점심이 지나고, 연습은 부족했지만 그간 함께했던 시민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광장은 시민합창단의 ‘골든’과 ‘아름다운 나라’ 노래 소리에 점점 하나의 리듬으로 맞춰졌다. “함께해요 업업업, 지구를 위해 함께할 때 더 빛나요” 익숙한 멜로디 위로 낯설지 않은 마음이 겹쳐졌다.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박자를 맞췄고,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햇빛에 반사된 듯 눈이 부셨다. 곡과 곡 사이, 잠시 공동위원장으로서 인사말을 전하며, 반가움과 고마움을 먼저 전했다. 지구의 날은 기념하는 자리이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약속하는 날이라고, 오늘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하나만 덜 쓰고, 다시 쓰고, 함께하는 약속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마음을 건넸다.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그 마음 그대로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과 생태선교센터 나아지구”가 함께 운영한 “플라스틱 역사와 그린하트” 부스로 발길을 옮겼다. 작은 전시와 체험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는데, 플라스틱 타임라인 앞에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오래 멈춰 섰다. 누군가는 연표의 숫자를 따라가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이게 이렇게까지 이어지는구나” 하고 낮게 말했다.
그 옆 그림책 코너에는 아이들이 놀랍도록 진지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이 조심스러웠고, 문장을 따라 읽다 잠깐 멈추는 눈빛에는 ‘아는 척’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힘이 있었다. 아이들이 집중해 읽고 나서 남긴 그린하트액션 엽서가 한 장 한 장 쌓여갈 땐, 올해도 지구의 미래가 또 한 자락 자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빛 나뭇잎 도장과 함께 쓰여진 작고 단단한 글씨들이, 오늘의 열기만큼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웃음이 터진 장면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구의 날 날짜에 맞춰 주방세제 422밀리리터를 정확히 담아온 사람에게는 세제에 더해 비누까지 ‘덤’으로 얹어 드리는 이벤트가 나아지구 코너에서 진행됐다. 500짜리 페트병에 422를 맞추려 애쓰다 아쉽게 넘치거나 모자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확히 422밀리리터를 맞추는 순간 주변에 있던 모두가 손뼉을 치며 함께 기뻐했다. 제로웨이스트 실천과 나눔이 꼭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해주는 듯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이나 유모차를 끌던 보호자가 잠시 멈춰 서면, 조심스레 한 걸음 더 다가가 참여를 권했다. 어떤 방문자는 지역 행사에서 전시를 진행해 줄 수 있냐고 물었고, 또 누군가는 “몇 해째 탄소금식을 하고 있어요”라며 기독교 환경부스가 있어 반가워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잠깐 머물렀다 가는 인사와 긴 대화가 뒤섞이는 사이, 이 자리는 단지 ‘부스’가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는 자리처럼 느껴졌다.오늘 종일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엽서에 한 줄을 적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살림 코디와 나아지구 매니저의 손이 닿는 곳마다 지구를 향한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번져 갔다.
행사는 끝났다. 하지만 끝이라기보다 다음을 위한 여백에 가까웠다. 오늘 여기서 배운 감각은 ‘행사장 밖’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텀블러를 들고 돌아가는 손, 과대포장을 한 번 더 바라보는 눈, 혼자가 아니라 함께 바꾸자고 말하는 목소리로.
뜨거운 여름 같은 봄날, 우리는 거창한 결심 대신 작게라도 가능한 일을 확인했고, 각자의 속도로 가져갈 문장을 하나씩 품었다. 그 문장들이 내일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질 것을 믿는다. 그것이 오늘, 여기서 시작된 약속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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