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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녹색)교회 이야기/교회 정원 숲

교회정원숲워크숍3) 정원숲 신학을 시작하며 - 김수연

by 살림(교육센터) 2018. 11. 2.

정원  신학을 시작하며 


연세대 객원교수, 이화여대 강사 김수연 

 

학교에 가기 위해, 이따금  대씩 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자투리땅을 보게 되었다. 겨우 내내 플라스틱, 종이컵, 담배꽁초로 덮여 있어서 정말  쓰는 땅인 줄만 알았던 작은 땅이었다.   대도 주차 못할 정도의 삼각형 비슷한 좁은 땅이었던 것이, 어느  보니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이 심겨 있는, 그리고 이랑 고랑을 갖춘 제법 밭의 모습이 되어 있었고,   후에는 버팀목에 기대어 키도 훌쩍 자라났고 열매도 많이 맺었다. 쓰레기에 덮여 있어 죽은 땅인 줄만 알았는데, 열매를 맺을  있는 제법 넓은 살아있는 땅이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땅은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누군가가 버린   개의 쓰레기에 마치 쓰레기 버려도 되는 것으로 허가 받은 , 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심코 계속 쓰레기를 버려, 더럽혀진 것이었다. 그러나 꽃밭처럼 아름다운 채소밭으로 변했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건강한 밥상을 제공했을 것이다.

땅은 분명 살아있는 생명이고,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가 지적한 것처럼, 생명을 보듬어 자라게 하고 또한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지구 생명 ‘가이아 성서의 하나님과 다르지 않다. , , 자연 속에서 함께 하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 몸을 제외한 영혼의 구원이라거나 혹은 동식물을 제외한 인간만의 구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류터의 생태신학은 유기체적인 지구생명체의 공동운명을 강조하며 사랑의 실천을 인간 외의 다른 존재로까지 확대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류터의 신학은 ‘계약 전통 강조하며,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법을 통해 하나님과의 본래적인 관계를 회복하려  히브리 사상을 주목한다. 신약성서 안에 있는 주의 은혜의 ,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는 기쁜 소식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러한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류터는 계약 전통의 관점에서 인간이 만일 특별하다면 그것은 지배자로서가 아닌 ‘관리인(caretaker)’ 그렇다고 한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성례전적 전통 하나님의 창조가 궁극적으로 치유이고 구원이라고 보는 관점으로서, 예수그리스도의 현현은 결국 우주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샐리 맥페이그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성례전적인 입장 ‘예언자적인 입장으로 설명하며, 전통적인 기독론의 내용인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제 희생적인 구원보다는 구원적인 창조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기독론의 내용을 희생적 속죄가 아니라 우주의 웅대함과 인간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신학으로 제시하며, 상호관계, 상호의존의 네트웍을 가진  지구라는 별을 유지하는 생태신학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또한 실재라는 사실을 주장하며, 맥페이그는 ‘신학,’  하나님에 대한 말의 최소화와 찬양과 연민의, 삶의 신학을 제안한다.    

이러한 생태신학의 내용을 검토하며, 다시  몸인 지구 공동체를 생각해  , 지구생명에 유해한 것들,  플라스틱, 핵발전소, 합성물, 화학물 등을 제거하는 일들이 서양의 치유요법이라면, 이제 시작하는 정원숲의 신학은 지구생명 유기체 안의 세포 하나하나를 다시 건강한 세포로 살려내고자 하는 동양의 치유요법이라 생각된다.  가지 치유요법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실행될  지구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해   있을 것이다. 미국의 드류대학 시절, 학생관  마른 땅에 고사리를 심어 작은 숲을 만들었던 니콜과 그의 친구 매튜의 노력이 생각나며, 우리의 캠퍼스 곳곳에도 생각을 일깨우는 땅들이, 뜰로 밭으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에코, eco 그리스어로 , 삶의 공간, 그리고 살림을 의미한다. 푸른  지구 행성을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여기며, 버릴 , 비울 , 부족한 것을 찾아내며, 우주적 규모의  살림을 시작하려는, 정원숲의 신학을 지지하며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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