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개소예배 때 공동대표이신 이광섭 목사님이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3년째를 맞아 다시 들어봅니다. 함께~*
***
생명은 의존적이다
<출16;13-21>
기독교환경교육센타 살림에서 ‘살림사전’을 만든다고 하지요? OOO 간사가 며칠 전에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살림이란 무엇입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마종기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말고)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시를 읽으면서 깨닫습니다. 아, 살림이란 잘 살펴보는 것이로구나,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로구나! 정말 그렇습니다. 살림의 기운이 온 천지에 약동합니다. 5월이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달이기도 합니다만, 지난 금요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감격과 감동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왜 이토록 감동하는 것일까요? 이 땅 한반도에 짙게 드리우고 있던 죽임의 기운이 거둬지고 생명 살림의 기운이 가득해지는 것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언론의 보도처럼 100년 만에 찾아온 놓칠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일 것입니다. 남북 두 정상들이 도보다리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습니다. 땅속 깊이 잠들었던 녹음이 나무들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멋진 배경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40여 분간의 나무 벤치 위의 대화는 마치 남북한 겨레를 향하여 ‘우리는 정말 살아날 수 있어!’ 하는 외침과도 같았습니다. 정말 꿈만 같은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살림의 자리를 더욱 황홀하게 만들었던 것은 새들이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두 정상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새소리만 “휫 휫 휫 삐비비비~, 휘욧 휘욧 휘이 찌잇~” 들려왔습니다. 새들의 중계!, 저는 천상의 소리만 같았습니다. 나중에 보도를 보니까 이 날 등장한 새소리들은 <되지빠귀>, <산솔새>, <박새>, <청딱따구리>, <직바꾸리> 등이었답니다. 새들도 저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은 상호의존적입니다. 지금껏 우리 남한은 잘 살아보려고 얼마나 애를 써 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처지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살아도 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살려면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로구나! 이제야 이 사실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남북한이 함께 살아나지 못하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저는 경기도 화성군 팔탄면 하저리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음력으로 3월8일생 소띠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저희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녀석이 3월에 태어났으니 3월이면 소가 얼마나 바쁜 때이겠어. 평생 바쁘게 일하면서 많이 먹여 살리겠구먼!” 저를 향해 주신 할아버지의 이 말씀은 제 삶에 대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 댓살 쯤 되었을 때라고 생각되는데, 그 해에 큰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마을 저수지가 완전히 말라서 쩍쩍 갈라졌던 기억, 모를 내야 하는데 논에 물이 없으니까 논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기다렸다가 물을 퍼 올리는 기억, 그런데 잠을 자다가도 깊은 밤중에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물을 퍼 올리기 위해 논으로 달려가서 물을 길어 올리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참 어린마음에도 맘이 몹시 졸이고 아팠지요.
또 어느 해인가는 모를 내기 위해 논에 물을 가득 잡아 놓고 모를 내는 데요. 물이 가득 잡힌 논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논둑길을 걸어가다가 물그림자에 어지러워서 그만 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신나고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논에 물이 가득 해서 기쁘게 모내기를 하는 그 풍성함이 어린 제 마음에도 전하여졌던 것이지요.
제가 농사꾼 할아버지에게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으로 배운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늘의 도움을 바라보던 모습입니다. 농사일은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들에서 들밥을 먹다가 누군가 지나가면 반드시 불러서 함께 밥을 먹게 했습니다. 동네 사람이기도 했고, 혹은 우체부이기도 했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이웃 동네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도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성경말씀을 보면 볼수록 할아버지의 말씀과 삶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오늘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의 뿌리입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광야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광야길에 들어선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아우성을 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만나를 먹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째,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만나는 인간이 농사를 짓거나, 축산을 해서 얻은 생산물이 아닙니다. 만나를 얻는 데 사람이 한 일은 그저 줍는 일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진 밖으로 나가 만나를 주워왔을 뿐입니다.
둘째, 만나는 매일 아침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매일 아침 하루 먹을 분량만큼만 주셨습니다. 물론 만나를 욕심껏 더 주워 와서 쟁여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만나는 곧 썩었고, 냄새가 났습니다.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셋째, 7일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엿새째 되는 날에는 안식일, 7일치의 만나까지 거두어야 했습니다. 삶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도록 7일마다 분명히 상기시키십니다.
만나는 생명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생명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로구나, 생명은 의존적이구나!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자신이 의존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생명이 의존적이라는 것을 부정합니다. 의존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너희의 생명은 나에게 달려있다. 나를 의지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의존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만나를 자신만을 위해 쌓아두지 않습니다. 축재하지 않습니다. 평화가 무엇입니까?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둔”(18)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평화에 머물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그것이 정상인 줄로 압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고...”(19-20).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족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남겨두지 말고 축적하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삶의 환경에서 ‘기독교 환경교육센타 살림’ 걸어야 하는 길은 험난해 보입니다.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우리의 길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잘 걸어갈 수 있을까 염려와 두려움도 앞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기를 갖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따스한 얼굴빛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꿈을 펼쳐 나가려는 ‘살림’을 바라보시며 큰 격려와 복을 내려주시고 계십니다. 그 증표로 연약해 보이지만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렇게 불러 모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살림은 철저하게 서로를 의존하고, 그럼으로 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우리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 환경교육센터 살림’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생명은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밝히 드러나고 생명 살림의 큰 역사가 아름답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광섭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공동대표, 전농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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