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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영성/생태 리트릿

침묵과 빛 사이 - DMZ 창조영성 리트릿 이틀의 기록

by 살림(교육센터) 2025. 12. 25.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지난 12월 22일부터 23일까지 1박 2일 동안 14명이 함께 파주 DMZ 창조영성 리트릿을 했다. 올해 창조영성 리트릿 네번째, 마지막 영적 여정으로, 분단의 상징인 DMZ에서 평화와 생명의 의미를 성찰하는 자리였다. 

문산역에서 모여 임진나루터를 시작으로 장산 전망대 순례길을 걸으며 침묵 기도의 시간을 가졌고, 둘째 날 새벽에는 빛과 새들이 드러나는 창조의 순간을 체험했다. 덕진산성 하류에서 임진강을 관찰하고 초평도를 조망한 뒤 고랑포에서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현호 신부(파주 성공회)와 김승호 소장(DMZ생태연구소)의 안내로 역사적 장소를 걸으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고, 미래의 평화와 화해를 소망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 문산역에서 함께 모였을 때,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 특별한 여정에 함께하기로 한 14명. DMZ라는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임진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 김현호 신부(성공회)의 설명을 들으며 이곳이 단순한 강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는 한국군들이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말을 타고 달려와 배를 타고 건넜던, 그렇게 개성을 거쳐 평양까지 피난했던 역사의 현장. 강물을 바라보며 그 옛날의 급박했던 순간들을 상상해보았다.

장산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정성을 들여서, 노동하듯이 걷는 겁니다"라는 가이드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평소에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며 걸었는데, 이 순례길에서는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20분쯤 올라가자 갈림길이 나왔고, 우측으로 접어들어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일렬로 걸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임진강과 북녘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숨이 막힐 듯한 풍경이었지만, 감탄사를 내뱉는 대신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정자에 앉아, 혹은 풀밭에 서서 15분간 침묵하는 시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그 고요함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 소리, 새소리, 그리고 내 안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나눈 대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평화를 주제로 걷고 있지만, 자연을 훼손하자는 게 아니라 원래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니까, 그 땅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초평도가 순례자의 섬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 트럼프 정부 때문에 더 복잡해진 남북 관계에 대한 걱정, 그럼에도 민간 차원에서라도 교류와 교육을 계속해야 한다는 희망. 우리는 밤이 깊어가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째 날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출발했다. 잠에서 덜 깬 몸을 이끌고 차에 올랐지만, 차가운 새벽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에서 우리는 다시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빛이 스며드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회색에서 푸른색으로, 다시 붉은빛을 머금으며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창조의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새들의 소리가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의 지저귐이었다가, 점차 합창으로 변해갔다. 어둠에서 빛으로, 고요에서 생명의 소리로 옮겨가는 그 전환의 순간. 누군가는 이것을 부활의 체험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전환을 온몸으로 느꼈다.


덕진산성 하류로 이동했을 때, 임진강의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DMZ생태연구소 김승호 소장의 설명을 들었다. "만조 때가 되면 이 토사가 다 덮일 정도로 물이 차오릅니다. 만조 때는 저쪽으로 물이 흘러내려가고, 아래쪽으로는 역류를 합니다." 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물은 항상 흐른다. 막혀도 결국 길을 찾아 흐른다. 분단된 강이지만, 물은 경계를 모른다.

앞에 보이는 섬이 초평도라고 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며 농사를 지었다는 그곳은 지금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어제 가이드 때 이야기됐던 것처럼 이곳 초평도가 언젠가 순례자의 섬이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했다. 아마도 땅도 제 소명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다시 DMZ에서 나와 고랑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예전에는 배를 이용해서 만조를 이용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활발한 포구였죠." 지금은 고요한 이곳이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지난 이틀을 돌아보았다. 임진나루터에서 시작해 장산 전망대를 거쳐, 새벽의 빛을 체험하고, 다시 강을 따라 고랑포까지.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이 여정이 내 안에 무언가를 심어놓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 뒤로 평야가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옛날 사람들이 다녔던 길입니다. 이 산을 넘어 해주로, 황해도의 넓은 평야로 이어지던 길이었죠." 김 소장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분단되기 전,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던 그 길을. 다시 그렇게 될 날을 꿈꾸며.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헤어지며,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걸었다는 것, 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 같은 침묵을 나누었다는 것이 무언의 연대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겨울 독수리들이 몽골에서 날아와 먹이를 먹고 다시 돌아가듯, 생명은 경계를 넘어 순환한다. 평화도 그렇게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리트릿을 마무리 하던 중,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는 길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지만, 한순간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엉치뼈와 머리를 땅에 부딪혔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지만, 곁에 있던 이의 도움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듯했지만, 그 통증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더해지는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이 이 순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준비된 여정이 아니라,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 자체가 순례라는 것을. 통증 속에서도 계속 걷고, 또 그렇게 여정은 이어지는 것이지 싶다.

이제 내 일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DMZ에서의 이틀이 우리 모두 안에 새로운 씨앗을 심어놓았을 것이다. 그 씨앗이 언젠가 평화의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한 발 한 발 걷는다


참가자 후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참여한 생태영성 리트릿. DMZ에서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진행되었던 여러 절차를 거쳐, 쉽지않은  ‘방문’이라기보다 하나의 느린 기도였다. 말을 줄이고, 속묵 속에서 걸었다.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일어나 길을 나섰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의 몸으로 땅을 딛고 한 걸음씩 옮길 때, 평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호흡과 발걸음의 리듬으로 다가왔다. 말이 사라지자 감각이 열렸고, 그 사이로 들려온 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새들의 노래였다. 경계와 긴장의 상징으로만 여겨지던 공간에서, 생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자리를 지키며 노래하고 있었다.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온 것은 멈춰 있지 않은 자연의 움직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 순간적으로 날아오르는 새, 조용히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 분단의 시간 위에 덧씌워진 침묵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살아 있음의 시간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DMZ는 죽음의 경계가 아니라, 생태와 평화가 가장 진하게 보존된 공간임을 몸으로 깨달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함께 걷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침묵을 견디는 경험은 깊은 연대를 만들어냈다. 평화는 혼자서 완성되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부담 없이 허락하는 관계 속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을 이 순례는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이 순례는 어떤 결론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겼다. 평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DMZ에서의 침묵과 새벽의 걸음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느리게, 조심스럽게, 함께 살아가라는 좋은 배움이었고,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함께 한 아름다운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이*선>

 

파주 DMZ 생태 순례 프로그램을 올 해 두 번 참가했습니다. 자연 속에 머물면서 보냈던 시간이 인상깊습니다. 김승호 소장님께서 들려주시는 두루미들의 생애, 철새들의 움직임, 새들의 노랫 소리, 그리고 가족을 일구어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 등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번 겨울 순례에서 김현호 신부님과 함께 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영성 훈련 방식을 터득할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살림에서 순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주시고, 내년 프로그램에 반영하신다고 하여 매우 기쁩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식탁도, 귀한 메기 매운탕도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음식과 간식 모두 풍성하게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탄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저녁 식사여서, 일 속에 파묻혀 있다가 성탄의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모두가 생일 파티를 해 주서셔 저로서는 영광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겨울 DMZ 프로그램 할 때 마다 감기가 걸리고 말았네요. 추위에 면역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실외 활동을 하고 잠시 실내에서 휴식을 하면서 체온을 유지하고, 다시 실외로 나가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추위에 한 곳에서 오래 머물기에 몸이 약한 분들이 쉼터처럼 잠시 머물다가 다시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김*해>

 

"자연과의 교감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기도 힘들고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도 잘 나지 않았는데 잠깐의 쉼을 얻고 갑니다"  <현>

 

내가 상상했던 DMZ는 내 눈 앞에서 온갖 야생동물이 뛰어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북한과의 경계를 두고 사람이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그런 곳에 갈 거라 생각하니 설레고 기대감이 컸다. 야생동물도 보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며 힐링 될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물론 힐링도 되었지만 왜인지모를 안타까움과 씁쓸함도 남았다. 파주에 도착해서 신부님을 따라 침묵 순례를 하면서 장산 전망대로 올라갔는데,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땅을 밟으며 올라가면서 발자국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가끔씩 주위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사격훈련을 하는 중이란다. 꽤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은 총소리였지만, 마치 내가 전쟁 대비에 함께 하는 것 같이 느껴지면서 조금 두려웠다. 언젠가 일어날 전쟁에 대해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정말 막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장산 전망대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아주 푸른 색의 임진강이 보였다. 처음 보는 임진강의 모습에 경이로웠고, 그 임진강을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부러웠다. 새들은 저렇게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왜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땅도 자유롭게 가지 못할까. 자유롭고 싶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임진강 근처로 가서 탐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가 늦게 떠서 처음엔 너무 어둡고, 춥고, 임진강 너머 38선 경계를 알리는 불빛만 반짝였는데, 해가 뜨기 시작하니 하늘이 불이 난 듯이 붉은색으로 칠해지고, 새들이 하나 둘씩 소리를 지르며 아침이 밝았음을 알렸다. 해가 뜸이 동시에 새들이 활발해지는 것을 처음 봤는데 정말 신기했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새들이 일사불란하게 날며 춤추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자연은 해시계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말도 와닿았다. 도시에서만 살고, 또 현대사회에서 자연을 감각하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자연과 늘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리트릿을 통해 한 해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새해를 맞이해야 할지도 생각해보아서 좋았다. 현대의 문명과 도시의 습성을 조금은 벗어나서 자연의 감각을 살리고, 순례 걷기도 매일 하면서 미디어가 아닌 자연의 소리, 나의 내면의 소리에 더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져야겠다.   <도*희>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밀리듯 다음 시간으로 내몰리는 삶에서 맞춤표가 없다면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좌표를 잃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DMZ의 가장 조용한 곳에 찾아와 다음을 준비하는 철새들의 삶을 바라보며, 2025년을 그들의 날갯짓에 훨훨 날려 보내고, 2026년을 새무리가 기류와 방향을 읽어 날아오르듯 내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본다. 제법 추운 날씨 탓에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피부를 다시 실감하며, 에이는 듯한 추위의 통증으로 더욱 더 내게 집중하게 된 시간이다. 비록 지금은 새해를 방구석에서 잔기침을 달래며 맞이하고 있지만, 살림과 함께한 한 해의 마무리 의식을 몸에 담았기에 그리 억울하지 않다.^^ <기러기를 닮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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