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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영성/생태 리트릿

지난 10월 DMZ평화생명동산 창조영성 리트릿~ 늦은 후기 올려둡니다

by 살림(교육센터) 2025. 12. 13.
1박2일 창조영성 리트릿에 대한 늦은 후기를 올려둡니다!

갈라진 땅 DMZ 평화생명동산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분단의 상처 위에 피어난 자연의 회복력을 목격하며, 자신의 갈라짐과 상처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생명평화살림의 길을 걸어갈 마음을 다졌습니다.
돌아오는 길, 인제 꽃축제에도 잠시 들렀는데, 이틀간의 들음과 봄, 그리고 나눈 이야기를 일상에서 잘 살아낼 수 있겠다 싶네요.
"스스로 함께 한결같이" 걸어갈 우리 모두를 응원합니다.

 

DMZ평화생명동산 창조영성 리트릿~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경청과 배려" - 치유와 평화의 여정

들어가며

2025년 10월 8일부터 9일까지, DMZ 평화생명동산에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경청과 배려'를 주제로 한 창조영성 리트릿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연과 평화, 그리고 생명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었던 이 시간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우리 사회와 개인이 겪고 있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1. 자연 이름으로 시작된 만남

이번 리트릿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함께했습니다. 각자 자연에서 불리고 싶은 이름을 정하며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으로 시작했는데, '바람처럼', '계수나무', '지리산', '무지개' 등 각자의 개성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담긴 이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작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며, 피조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2. 정성헌 선생님과 함께한 생태살림평화 대전환

정성헌 이사장님의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기후 문제와 생물다양성 문제는 이론과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실천이 부족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환경운동은 소수가 열심히 하다 지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특히 1980년대 우리밀 살리기 운동 사례를 통해, 우리 농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실천적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산을 함께 걸으며 심어진 나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순히 자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 침묵 기도와 내면의 상처 돌아보기

이번 리트릿은 14세기 기독교 영성 전통의 '침묵 기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3분간의 침묵 시간을 가지며,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호흡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히 하고, 텅 빈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내면의 상처 돌아보기'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개인화되면서 자신의 내면 상처를 어떻게 다룰지 잊어버렸습니다. 이번 리트릿은 기독교 영성 전통의 지혜와 현대 심리학적 이해를 결합하여, 우리 안의 상처를 양지로 꺼내어 바람을 통하게 하는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 개념이 강조되었습니다. "누구도 상처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다른 이들을 위한 치유의 통로로 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4. 트라우마 치유의 여정

김오성 목사님은 트라우마의 다층적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청소년들이 학교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잃고, 수학여행 같은 일상적인 활동에도 불안을 느끼게 된 것처럼, 작은 트라우마들이 쌓여 안전감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가 단절되고, 결국 "나 혼자 살아야 한다"는 고립된 생존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10-20년간 한국 사회는 개인적 트라우마가 집단 트라우마로 확대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SNS를 통해 드러나는 극단적 대립, 정치적·종교적 갈등, 성소수자 이슈를 둘러싼 분열 등이 그 예입니다. 우리는 마치 "심리적 내전 상태"에 놓인 것 같습니다.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 기후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상처

특별히 인상 깊었던 개념은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였습니다. 이는 자연이 주는 심리적 위안(Solace)과 향수병(Nostalgia)을 결합한 신조어로, 기후변화로 인해 살던 곳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고향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합니다.

10월인데도 부산이 29도를 기록하는 요즘, "내가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사계절의 개념이 무너지고, 익숙했던 자연환경이 변화하면서 우리는 떠나지 않았지만 고향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태적 트라우마입니다.

 

상처를 나누고 이해하는 시간

이론적 이야기 후, 우리는 4명씩 소그룹으로 나뉘어 자신의 상처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를 서로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척하지 않고 피해자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명소"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용서와 거룩한 분노 사이에서

목사님은 용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누셨습니다. 특히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주변에서 무분별하게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지적하셨습니다. 모든 상처가 용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상처는 간직함으로써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분노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분노는 거룩한 분노가 됩니다."이 말씀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상처를 단순한 분노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로 승화시켜 변화의 동력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의 훈련이자 기도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떼제 공동체의 화해 사역

이어 프랑스의 떼제(Taizé) 공동체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로제 수사는 전쟁 중 서로 총을 겨누었던 유럽 청년들 사이의 깊은 갈등과 분열을 목격했습니다. 떼제 공동체는 이러한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기도와 화해의 공동체를 만들어냈고, 지금도 매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그곳을 찾아 일주일간 기도에 참여합니다.

 

5. 예술 워크숍

김은해 목사님과 함께한 예술 워크숍에서는 침묵 기도와 예술적 표현을 결합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그림이나 글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창작 활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시각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6. 그림책과 소리풍경

둘째 날 오전, 유미호 센터장님과 함께 '기이한 DMZ생태공원' 그림책을 통한 생태평화 이야기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그림책은 DMZ라는 특별한 공간이 어떻게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품으면서도 생명의 보고가 되었는지를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참가자들은 DMZ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 - 두루미, 산양, 담비, 수달 등 - 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간의 갈등으로 만들어진 경계선이 역설적으로 많은 생명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사실이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분단의 아픔과 생명의 회복력이 공존하는 이 역설적 공간에서, 우리는 평화와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소리풍경(Soundscape) 담기' 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동산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등 평소 놓치기 쉬운 자연의 다양한 소리들을 의식적으로 듣고 기록했습니다.

이 활동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모든 피조물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경청'의 실천이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 동안, 참가자들은 자연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지만 우리가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리풍경 담기는 자연과의 소통을 회복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7. 침묵 걷기 기도와 닫는 예배

둘째 날 오후에는 침묵 걷기 기도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서 배운 소리풍경 담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은 더욱 깊은 침묵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닫는 예배로 리트릿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창조영성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나누었습니다.

 

나가며 - 창조영성, 실천적 영성으로

이번 리트릿을 통해 창조영성이란 단순히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넘어, 우리의 삶 전체를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실천적 영성임을 깨달았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회피하고 싶었던 내면의 상처를 직면할 수 있었고, 침묵 속에서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상처를 음지가 아닌 양지로 꺼내어 바람을 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갈등, 개인의 내면적 상처, 생태계의 파괴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통합적 관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의 에너지를 길러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DMZ평화생명동산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닙니다. 분단의 상처가 남아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개인적·집단적·생태적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화해와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자연이 주는 위로(Solace) 속에서, 우리의 상처를 나누고, 거룩한 분노를 품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이 모여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모색했던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실천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실천적 배움의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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