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죽음" 토크 ; 생명의 순환 속에서 삶의 마침표를 다시 그리다


지난 11월 21일, 연세대 원두우관 2층 수풀아래와에서 "생태적 죽음: 생명의 순환 속 죽음을 바라보다" 토크가 열렸다.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연세대 신과대 여동문회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행사는 담안유 목사의 사회로 세 분의 여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김정형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장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교회의 경향을 지적했다. 그는 죽음이 창조 세계의 일부이자 선한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로 죽음을 무한히 미루려는 시도는 진정한 구원이 아니며,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일 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신학적 성찰을 나누었다.
이숭리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공동대표는 이기철 시인의 "별까지는 가야 한다"를 낭송하며 자신의 삶을 고백했다. "나는 너무 오래 햇볕을 만졌다. 이제는 햇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 별을 만져야 한다"는 시구를 통해, 생태적 삶을 완벽하게 살지 못했던 자신의 여정을 성찰하며 죽는 날까지 충분히 살아가야 함을 담아냈다.
김향아 연세대 여동문회 전 회장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죽음 직전에 그려진 이 작품 속 밤하늘은 소용돌이치고, 사이프러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그는 죽음이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의료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 극복할 실패로 취급하며, 이들을 고립시킨다고 지적했다. 중환자실의 한 환자를 떠올렸다. 의식 없이 수많은 관과 기계에 의존한 채 누운 그 사람이 과연 이런 연명을 원했을까? 생명 연장 기술은 본인의 뜻이나 존엄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죽음조차 의료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현실 속에서, 목회자이자 여성으로서 그는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다시 우리 손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1부: 생명의 순환 속 죽음을 바라보다
유기쁨 서울대 교수는 생태학자의 시선으로 죽음이 생명 순환의 한 부분임을 이야기했다. 자연 생태계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것. 그는 소록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살았던 소록도의 풍경, 그곳에 묻힌 이들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 위로 자라난 나무와 풀들. "이곳에 묻힌 분들의 몸은 이제 흙이 되어 나무의 뿌리를 키우고, 그 나무는 다시 그늘을 만들어 살아있는 이들을 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는 생명입니다."
사진 속 소록도의 나무들은 유난히 푸르렀고, 그 아래 피어난 야생화들은 작지만 생생했다. 참가자들은 숙연해졌다. 한센병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다는 게, 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낙엽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그 토양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 한 생명체의 죽음은 다른 생명체에게 양분이 되고, 이 순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때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소록도의 사진들은 이 순환의 원리를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현대 사회가 죽음을 생명의 순환에서 분리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인상 깊었다. 우리는 죽음을 병원과 장례식장에 격리시키고,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연시키며, 분해되지 않는 관과 납골당으로 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이는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적 문제이기도 하다. 소록도 사진을 본 후, 참가자들에게 이 지적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만약 그곳의 죽은 이들도 콘크리트 납골당에 갇혀 있었다면, 저 푸른 나무들은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생명체들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도 소개했다.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란 후 죽음을 맞이하며, 그 죽은 몸은 강과 숲의 생태계에 귀중한 영양분이 된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무리를 떠나 조용한 곳을 찾아가며, 다른 코끼리들은 죽은 동료의 뼈를 만지며 애도한다. 자연의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수용과 순환의 지혜를 보여준다.
발표 후반부에서는 생태적 죽음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들이 제시되었다. 자연장, 수목장 같은 친환경 장례 방식, 생분해되는 관이나 수의 사용,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태도의 변화.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생명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과정이며, 우리 각자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마지막 생태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발표가 끝난 후에도 소록도 사진들은 참가자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니라, 고통과 죽음 너머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증거였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키울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2부: 죽음의 외주화를 넘어, 공동체적 애도와 기억
김홍일 성공회 수원교회 사제의 발표는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 어떻게 '외주화'되어 왔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과거 죽음은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준비하고 맞이하며 애도하는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병원, 장례식장, 묘지 관리 업체 등 전문 기관에 모두 맡겨지면서 우리 삶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사제는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한 교인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가족들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였고, 정작 임종의 순간을 함께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장례 역시 장례식장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기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고인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이러한 '외주화된 죽음'은 효율적일지 몰라도,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관계를 돌아보며 공동체가 함께 슬퍼하고 위로받는 소중한 기회를 빼앗아간다.
죽음의 외주화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로 '망각의 가속화'가 지적되었다. 과거에는 집안에 영정을 모시고 기일을 챙기며 고인을 오래도록 기억했지만, 이제는 장례가 끝나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고인은 점차 잊혀진다. 공동체적 기억과 애도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도 함께 잃어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제는 '공동체적 애도와 기억의 회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가 임종과 장례, 그리고 그 이후의 추모 과정에 적극적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을 앞둔 이와 함께 기도하고, 그가 살아온 삶을 나누며, 마지막 순간을 공동체가 함께 지켜보는 것. 장례 후에도 정기적으로 고인을 기억하는 추도 예배나 모임을 갖는 것. 이러한 실천들이 죽음을 다시 삶의 일부로, 공동체의 경험으로 되돌릴 수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성공회 전통의 '위령 성찬례' 이야기였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함께 성찬례를 드리는 이 예배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죽음이 관계의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계속됨이라는 신학적 통찰이 예전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죽음을 외주화하지 말고, 우리 손으로 다시 가져옵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공동체와 함께 준비하고 맞이합시다.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기억하고 그들로부터 배웁시다. 그것이 생태적이고 신앙적인 죽음의 길입니다."



두 발표를 통해 죽음을 회피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공동체와 함께 준비하며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발표를 들으며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 나눔: 서클대화와 생태적 유언장 쓰기
마지막 순서는 '생태적 죽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앞서 두 발표를 통해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이며, 죽음을 외주화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애도하고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배운 참가자들은, 이제 각자의 삶 속에서 생태적 죽음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잠시 눈을 감고, 살아오면서 목격한 생태적 죽음 하나를 떠올려보자고 했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리, 사라진 풍경, 만날 수 없게 된 생명... 그 기억을 가슴에 품어보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김채영 선생님이 최근의 경험을 나누었다. 2주 전 살림에서 진행한 우포늪 생태리트릿에서의 일이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흙 속에서 썩어 부엽토가 되고, 연못 위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이불이 되어 물속 생명체들의 겨울나기를 돕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놀라운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러면 사람은요?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이 순환의 사이클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어서 그는 가족들이 경험한 여러 죽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언니, 손자가 태어난 지 열흘 만에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 중환자실에서 많은 이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가신 어머니, 폐암으로 고생하다 떠난 올케언니와 상해에서 숨을 거둔 조카, 집으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시어머니, 그리고 18년을 함께한 반려견 코코까지. 각각의 죽음은 달랐지만, 모두 그의 기억 속에 살아있었다. "앞서간 분들이 제 기억 속에 존재하고 있고, 저 또한 제 자녀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겠죠. 이렇게 세대를 이어 세대가 연결되어 가는 우리들 또한 우주적 순환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유미호 센터장은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죽음과 기억의 의미를 더 깊이 나누었다. '코코'는 멕시코의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죽은 이들이 산 자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한 저승에서 계속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짜 죽음은 이 세상에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온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의미를 전한다. 첫째, 죽음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변화이다. 둘째, 기억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다. 셋째, 우리 모두는 생명의 순환 안에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쉰다. 그들의 목소리, 웃음, 따뜻했던 손길이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계속 변화시키고 성장시킨다. 죽음으로 육체적 만남은 끝났지만, 기억과 사랑 속에서 관계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코코'가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이 흙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나뭇가지에는 이미 겨울눈이 만들어져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려 흙을 살찌우면서도, 가지 끝에 작은 겨울눈을 품고 다가올 봄을 준비한다. 한 생명이 끝나는 그 자리에서 이미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은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자양분이 되고, 우리가 살았던 이야기와 사랑은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싹튼다. "죽음과 동시에 새 생명이 준비되는 자연의 순환을 보며, 우리도 그 순환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찰을 나눈 후, 참가자들은 각자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생태적 유언장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가?" 하는 질문과 함께, 참가자들은 생태적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것은 법적 문서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 안에서 평화롭게 쉬고자 하는 영적 소망을 담는 기도문이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각자 펜을 들고 자신의 죽음 이후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다 쓴 후에는 자신이 쓴 유언장 중 내용을 들려주며 서로의 소망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은 순환의 축복 기도를 천천히 함께 낭독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품으시는 생명의 순환 안에 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삶과 죽음을 당신께 맡깁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살게 하시고, 죽을 때는 평화롭게 땅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게 하시고, 이 순환의 신비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참가자 모두는 순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되길 소망했다.
토크를 마치고
행사가 끝나고도 한참 그 여운 속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돌아가신 제인 구달 박사의 유언이 떠올랐다. 그분은 자신의 몸이 화학 처리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의 양분이 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우리 몸이 흙으로 돌아가 꽃과 나무를 키우는 양분이 되고, 그렇게 새로운 생명의 순환에 참여하는 것. 그게 진짜 생태적 죽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들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처럼, 우리를 기억하는 이가 있는 한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땅으로 돌아가는 우리 몸과, 사랑하는 이들 기억 속에 남는 우리 존재. 이 둘이 함께 생명의 순환을 이어간다.
오늘 모임이 참여한 모두에게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찾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신학적으로, 생태적으로, 실천적으로 죽음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며, 서클대화와 생태적 유언장 쓰기를 통해 죽음이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 속 자연스러운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와 함께 준비하며 기억해가는 것. 그래서 모두가 죽는 날까지 충분히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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