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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영성/기후 중보기도

2026년 2월 - 기후중보기도회 (산책기도)

by 살림(교육센터) 2026. 2. 20.

2월 19일 오후, 서울숲에서 2월 기후중보기도회를 마쳤다. 이번 모임은 "무엇을 더 말할까"보다 "어떻게 함께 서 있을까"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겨울의 공기와 나무와 물가, 그리고 도시의 소리 한가운데서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그 앞에 기도로 서는 법을 다시 익혔다.
 
우리는 먼저, 김은해 목사(살림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순서지에 적힌 『이름 없는 순례자』의 한 대목과 오늘의 성찰 질문을 함께 읽었다. 기도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형식적이고 서툴러도, 그 기도가 사람 안에서 만족과 열매를 남긴다는 고백.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신다"는 말씀 앞에서, 기도는 내 힘으로 만들어내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갈망에 응답하는 길임을 떠올렸다. 이번 기도회는 잘 해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내 몸을 가져다 놓는 연습이었다.
 
약 1시간 30분, 각자 홀로 천천히 걸었다. 말은 최소화하고, 발걸음의 리듬과 호흡에 귀를 기울였다. 들숨에는 "여기 있습니다", 날숨에는 "주님, 함께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우리가 흙에서 왔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기억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기온이 이미 1.1–1.2℃ 올랐다는 통계를 마음에 얹고 걷자, 지식이 곧바로 통곡이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외면할 수 없는 무게가 되었다. 기도는 그 무게를 회피하지 않고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다.
 
걷는 동안 유난히 자주 멈춰 섰다. 나무 앞에서는 "조급함에서 우리를 건지소서"라고 기도했다. 최근 몇 년간 산불 피해 면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 세상

을 회복시키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생명을 더 다치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봤다. 물가에서는 "우리가 고칠 수 없는 것을 맡깁니다"라고 기도했다. 해수면이 해마다 3–4mm씩 상승한다는 수치가 멀리 있는 뉴스가 아니라, 지금도 조금씩 차오르는 두려움처럼 느껴졌다.
 
이번 기도회에서 가장 선명했던 것은, 형식의 기도에서 삶의 기도로 이동하되 그것이 편한 합리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였다. 누군가는 "삶이 기도라고 말하며 살아왔지만, 그 안에 나태함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는 "할 말이 많을 때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같은 짧은 기도가 깊어진다"고 나눴다. 또 누군가는 호흡기도와 현존기도를 통해, 걸음 자체가 "쉬지 않고 기도"가 될 수 있음을 말해 주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배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미 곁에 계신 분을 더 자주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했다.
 
나눔 시간에는 공통의 긴장이 드러났다. "내가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과, "하나님이 내 안에서 일하신다"는 소명 사이의 긴장. 기후위기 앞에서 죄책감과 자책이 나를 붙잡지만, 그렇다고 그 죄책감이 내 영혼을 마비시키게 둘 수도 없다. 우리는 죄책감을 내려놓되 순종을 포기하지 않는 길을 찾는다. "내가 세상을 다 구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님이 내게 하라고 하시는 오늘의 한 가지를 하겠다"는 고백이, 이상하게도 어떤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자유는 무책임이 아니라, 눌린 마음에서 풀려나 옆사람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자리다.
 
이번 기후중보기도회는 겨울의 침묵 속에서 배운 기도였다. 겨울이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준비의 계절이듯, 우리의 기도도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땅속에서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 기도는 결국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의지를 일으키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 믿음의 첫 걸음을 함께 걸었다.
 
끝으로, 미리 준비해두고 홀로 묵상했던, 거점별 '기후중보 산책기도' 이미지 카드(하단 이미지 참고)를 전했다. 참석자들이 다음 달 모임 전까지 각자의 일상에서 때때로 꺼내어 기도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나서 3월 20일(금) 오후 2시에 수성동계곡에서 진행되는 3월 기후중보기도회에서 만나면~^^ (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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