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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문화 이야기/살림 문화 워크숍

2024 상반기를 정리하며, "살리미들의 생태 리트릿"을 다녀왔습니다!

by 살림(교육센터) 2024. 8. 1.

살리미들의 생태 리트릿!

 

말씀과 자연 속에서 가만히 머물며,

 

예상치 못했던 기쁨의 만찬,

 

그림과 우드카빙으로 들여다본 일상과 일,

 

공동체 춤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느끼는 하나님의 현존에 기뻐하며 일상으로!

 

 

살리미들에게 귀한 이야기 나눠주신 김채영 선생님의 글을 이곳에도 나눠봅니다.

 

우리의 삶에서 살림과 희년의 가치를 어떻게 실천해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며,

 

느릿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음과 뜻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림희년

 

글: 김채영

 

먼저 제 소개를 하자면, 20-30대에는 시모의 도움을 받는 워킹맘 직장인으로 앞만 보고 살다가, 30대 후반 늦둥이 출산을 하면서 전업주부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여 40대를 보냈습니다. 종이기저귀 대신 천기저귀를 사용하고 모유수유를 지향하며 고군분투한 기억이 새롭습니다. 개인적 신념에 따른 소신 있는 실천이었지만 초보주부로서 참 쉽지 않은 가사노동이어서 지나치게 애쓴 것 같은 소회도 있습니다. 늦둥이의 알레르기성 천식 덕분에 한살림 조합원이 되어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40대 후반기에 늦둥이 양육의 어려움으로 2년 반의 상담공부를 마친 후에는 정작 상담현장이 아닌 남편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50대를 보냈습니다. 60대에 코칭 공부를 시작하여 현재는 인증코치로서 특히 한국공익코칭협회에서 공익코치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살림 회원 자격으로 초대받은 살리미들의 생태 리트릿(SALIM ECO RETREAT)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되었습니다. 살림활동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는데, 센터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그동안 살림이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고 한 말이 기억났습니다. 작년부터 희년함께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운영위원 자격으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는 두 단체의 협업 가능성을 궁리해본 적도 있어,   제가 그동안 배우고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습니다.

 

살림희년. 환경교육을 통해 지구라는 환경과 생태 유지 보존을 위한 살림씨앗을 심고 있는  살림.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여 성경적 토지정의를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소리치고 있는 희년함께.

 

이 둘의 교집합은 바로 땅, 지구(EARTH) 입니다.

 

살림이 지향하는 주요 가치와 활동의 한 가지는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리는 그날을 위해, 지금 신음하는 이 땅을 회복시킬 살림 코디네이터로 살림씨앗으로, 당신의 참여로 이 변화를 만들어 가자고 알리는 것입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나누는 자리에 초대받은 연유도 저에게 살림씨앗이 되라는 초대라고 여겨집니다.

희년은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그 소유권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즉 사람에게는 토지, 즉 땅의 소유권이 아니라 임대권, 사용권이 주어진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성경에서 땅(Earth), 토지(Land), 기업(Property, POSSESSION), 유산(INHERITANCE), 분깃(SHARE) 등은 같은 맥락의 개념입니다. 땅은 사람의 소산물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기본권으로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그 땅에서 흘린 노동의 대가 혹은 소득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명하는 희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7번 지킨 후 다음해 즉 50년마다 모든 땅의 분배를 초기 상태로 리셋, 원위치 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안식년을 통해 사람(주인과 종까지)과 가축, 땅까지 휴식을 누리고 부채가 탕감되어 빚걱정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평화로운 삶일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7번의 안식년이 지나면 50년이 되는 해에 희년이 선포되어 모든 가족들이 자신들의 기업, 유산인 그 땅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유가 허락됩니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없을 것이고, 땅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경제불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경제 정의가 작동이 될 것입니다. 이 토지 정의는 사람뿐 아니라 가축들과 땅에도 적용이 되므로, 온 지구 공동체가 자유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살림이 지향하는 가치, 즉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세상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바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각 가족의 기업으로서 분배된 토지는 주거권과 노동권이라는 생존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을 사고 파는 가격 책정도 돌아올 희년이 기준이 되어 남아있는 잠재적 사용가치에 따라 정해지고, 희년이 되면 되찾을 수 있고, 다음 세대를 위한 유산 상속이 제도적 보장이 예측가능한 세상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풍요롭고 평회로운 삶을 기대하면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9세기 당시 사회는 기술의 발명과 문명의 발전으로 예전보다 진보하고 있는데 왜 가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많아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는데 바로 헨리 조지입니다. 경제학자요, 선지자로 평가받은 헨리 조지는 그 원인을 바로 땅, 즉 토지 독점에서 찾고 토지단일세를 제안합니다. 당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진보와 빈곤의 저자인 그는 자신의 책에서 토지를 단순히 땅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천연자원까지 포함시킵니다. 사람이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자연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세대가 복을 누리며 살도록 선물로 받은 공동유산이기에, 공동의 유익을 위해 잘 사용하고 관리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유익을 어떤 개인이나 국가가 독점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씨앗이 아닌 죽음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 기후라는 말에 위기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문득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생각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종교적 도식으로만 막연히 이해했습니다.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입안에 저장된 나 자신을 보면서, 어쩌면 노아는 당대에 대홍수가 올 것이라는 기후위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한 것은 아닐까?  당대사람들은 이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대홍수라는 재난으로 죽음에 이르렀다면, 결국 이 무관심과 태만이 인간의 죄악이며 대홍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 섭리가 아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기후 위기, 기후 정의의 경고와 외침에 익숙한 21세기 현대를 사는 우리의 현주소도 노아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기후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과연 어는 정도 심각하게 위기라고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게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을까요? 또한 기후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모색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정의롭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협의 과정에서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과연 실행가능한 것일까요? 여러가지 질문들이 생깁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의 심판에서 구출되었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노아의 방주는 어떤 모습이고 어디에서 누가 만들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희년과 성경적 토지정의를 평생 강조하셨던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고아원을 세워 고아들을 돌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아원이 아닌 가정입니다. 우리나라의 크리스천 가정에서 고아 한 명씩만 입양한다면 고아원을 지을 필요없이 고아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교회에서 많은 구제와 긍휼사업에 힘쓰고 있지만 여전히 그 필요는 넘쳐납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바꾸어 자비보다 정의가 먼저 행해지면 많은 빈곤의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어 구제와 긍휼의 필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미가서 6 8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먼저 정의를 행하고, 그 다음 자비를 행하고 마지막으로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기후위기에서 지구를 보호하고 환경을 지켜가는 일에서 이 우선순위를 지켜 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저는 짐작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질문을 살리미들 앞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아주 작은 살림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습니다. 이 작은 씨앗 안에 숨어 있는 생명이 발아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면서, 저에게 아주 작고 작은 씨앗을 심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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