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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영성/기후 중보기도

기후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지난 비상행동의 '기후중보기도회' 자료를 나눕니다.

by 살림(교육센터) 2021. 10. 30.

기후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더 이상의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더 이상의 회생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는 주일 10월 31일부터 시작되는, 제 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가 중요합니다. 참여하는 190여 개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야심찬 감축 목표와 실행을 약속해야만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COP26은 지금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과 같은 세계 최대 배출국가들의 약속과 가난한 나라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게 될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것에 따라 우리의 모든 삶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삶의 필수요건인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것과 머물고 이동하는 것은 물론, 모두의 집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생각하며, 지난 수요일 10월 27일에는 기후위기 기독교 비상행동이 주최하고,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과 한국샬렘영성훈련원의 '생태영성훈련 동역자모임'이 주관하는 기후중보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잠시 침묵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의 현존에 머물며,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것을 '함께 듣는다'는 믿음으로 기도하였는데요. 

참석은 못하셨지만, 자료를 요청한 분들도 계시고, 특별히 다가오는 11월 두 주간 동안 보다 많은 분들이 기후중보기도에 함께 하시게 되길 소망하기에 이곳에서 파일로 자료를 나눕니다.

 

<기후중보기도회 2021.10.27 순서지>

(COP26 회의를 앞두고 드린 26가지의 기도문과 그 해설집도 함께 넣어두었습니다. 연결되어, 계속 기도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6YCkyhfKtYChxlD4xdHLizrkh8XGehFq?usp=sharing 

 

기후중보기도 - Google 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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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google.com

<참고글>

침묵으로 드리는 중보기도

중보기도는 고통받고, 왜곡되고, 분열되고, 파괴되는 현실에 대한 영적인 도전입니다. 역사는 다가오는 미래를 믿는 중보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역사를 창조함에 있어서 우리의 역할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중보기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뒤를 따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안에서 이미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려 돌아설 때, 그것은 이미 기도의 두 번째 발걸음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계 안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우리 안에서 이렇게 탄식하는 성령은 해산의 진통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8:22)하며, 궁극적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성령은 이런 고통을 모아들여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탄식을 하며 우리를 통하여 내어놓습니다. 이들 탄식들은 우리들 자신의 탄식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며 표현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6~2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기도에서 우리의 임무는 성령의 탄식을 침묵 가운데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돕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흔히 생각하듯 기도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하는 것은 적당한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려 애쓰지 말고 단순히 귀를 기우려 들을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침묵으로 드리는 중보기도는 성령의 탄식을 듣는 시간입니다. 피조물의 탄식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신음을 듣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앞에 우리의 전 존재를 드러내고, 알려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침묵으로 드리는 중보기도는 성령의 탄식에 우리의 전 존재가 공명하여, 그 탄식의 울음소리를 온 몸으로 울려내는 시간입니다.

(이 글은 왈터 윙크의 <사탄의 체재와 예수의 비폭력> 16장 ‘기도와 사탄의 세력’에 기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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