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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읽기를 통한 그린 마인드셋” 모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살림(교육센터) 2025. 6. 28. 21:27

6월 27일 금요일 저녁, “아렌트 읽기를 통한 그린 마인드셋”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다섯 번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아렌트의 사상을 탐구하며 기후 생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형성해왔다. 마지막 날 시작 강의는 '정신의 삶이 어떻게 바깥으로 나가는지'에 초점을 두었고, 특히 폭력과 평화의 개념을 통해 환경 운동의 방향성을 고찰하게 해주었다.

폭력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아렌트가 바라보는 폭력에는 차이가 있다. 이끔이 이인미 박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폭력은 피가 나고 무기가 오가는 물리적 충돌이지만, 이는 단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의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갈등을 예로 들며, 물리적 충돌이 멈췄다고 해서 진정한 평화가 왔다고 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것은 "거짓된 평화"일 뿐이란 것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진정한 평화는 "시끄러운 평화"다. 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강제로 질서를 잡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태, 그것이 비록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아렌트가 말하는 진정한 평화의 모습이다. 그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대상을 변형시키는 모든 행위"를 폭력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어떤 형태로든 폭력성을 띠게 된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인데, 그 경계가 숙제로 남는다.

아렌트로 읽는 기후 환경 운동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지구 돌봄이라는 숭고한 목표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행동 변화를 요구하는 것, 그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 된다. "목표가 숭고하니까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는 논리에 빠지면, 우리는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참가자는 "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숭고한 가치를 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질문했고, "상대방의 현재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사람의 발전 단계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는 답변이 주어졌다. 가치를 먼저 전달하기보다 실천적인 방법부터 소개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답이지만, 오늘의 현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행위와 활동은 인간이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는 신앙적 관점과 아렌트의 사상을 접목한 답변이다. 또한, 강제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렌트의 방법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그것 때문에, 그동안 '살림'도 단순히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제로 한 교육과 실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처음부터 "지구 돌봄 서클"을 진행하고 전파해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아렌트 읽기는 우리 살림의 활동을 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라 기대된다.

이렇게 아렌트 읽기 모임은 끝났다. 다섯 번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아렌트의 '공통감각(common sense)' 개념이었다. 아렌트가 말하는 공통감각은 단순히 상식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공동체가 함께 세계를 감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주관적 의견을 넘어 공동체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힘을 길러가는 과정이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이 공통감각의 형성은 필수적이다. 환경 운동은 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동체의 판단, 즉 함께 분별함으로써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요즘 나는 강의하거나 대화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공동체의 분별력 있는 행동을 강조한다. 개인적 행동 변화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공동체가 함께 기후 문제를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통감각으로 사유-의지-판단을 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확장된 공동체를 이룰 것인가가 요즘 내 고민의 핵심이다. 물론,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동체를 완벽하게 이루는가는 그다음 문제다. 우선은 지금 함께하는 이들과 그 공통감각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당면 과제다.

다섯 번의 모임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었다. 우리는 자꾸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로 자꾸 판단하려 든다. 일과 삶 속에서 매번 부딪히게 되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는 대화는 어떻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사유하며 변화를 만드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여전히 넘어가야 할 산이 높고 커 보이지만, 이번 아렌트 읽기를 통해 특별히 감사하고 희망을 품는다. 아렌트의 사상은 단순한 이론적 탐구를 넘어 나의 삶과 살림의 활동에 깊은 통찰을 주었다. 그래서 고맙다(이끌어 준 이도, 함께한 이도). 앞으로 더 살림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시간은 없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최대한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대방의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그리고 공동체의 공통감각을 키우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