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3_에큐컬럼
국민 식단 단골 재료인 계란, 어디서 오나요?
김귀한
이젠 창문을 열어놓아도 서늘한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들어 옵니다. 지난 몇 달이 꿈만 같습니다. 봄부터 시작된 가뭄이 6월까지 땅과 농부의 속을 까맣게 태우더니 장마를 지나며 해갈이 되는가 싶었습니다. 장마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8월에는 거의 날마다 비가 내려 농부들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가뭄 때는 지하수물이라도 끌어올려서 견딘다지만 줄창 계속내리는 비는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가뭄에는 어떻게든 견뎠는데, 비가 계속 되는 동안 대롱대롱 매달린 고추들의 절반은 비에 녹아 내려 땅에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올해 고추 값이 걱정이 됩니다. 올해 고추 값이 걱정이 됩니다. 시장에 내놓을 고추들은 농약을 더 할텐데 그것도 걱정입니다.
보통은 장마가 끝나고 한 숨 돌리고 나서 8월 초에는 배추와 무를 심습니다. 8월 후반인 지난주까지 지루하게 내린 비 때문에 배추와 무를 심을 시기를 놓친 농부들의 발걸음이 바쁩니다. 가을 상추도 빨리 심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좀 늦었지만 아낙네의 키만큼 자란 풀을 베어 내고 퇴비를 뿌리고 땅을 조금만 갈아엎어야겠어요.
시골에선 비가 너무 내려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지난 8월에 도시에서는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있었던 AI(조류 인프루엔자) 사태 때문에 계란 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아 온 나라가 불편함을 겪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도시인들의 식단에서 주식이 되어버린 수많은 계란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자라서 우리 식탁까지 올라오는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철새들이 뿌려대는 바이러스를 이겨내기에도 너무나 힘들었는데 이젠 닭들 사이에 퍼지는 진드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계농장들이 경쟁적으로 값 싸게 계란을 시장에 쏟아내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을 할 수 밖에 없겠지요. 비좁은 닭장에 갇혀 모래목욕을 못하는 닭들 사이에 진드기가 창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진드기는 닭한테 뿐만이 아니라 닭을 사육하는 농부들의 몸에까지 파고든답니다. 살충제를 안 뿌리고는 닭을 키울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난 겁니다.
최근 들어 ‘동물 복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동물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동물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인간들에게 끼치는 그 악영향을 막을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닭들에게 뛰어 놀면서 신나게 모래 목욕을 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계란 값이 비싸지겠지요?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계속 반복되는 AI 사태로부터,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동물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해서 동물복지농장으로 바뀌어나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 사시사철 발생하는 진드기 퇴치를 위해 정부와 과학자들의 노력이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값싸게 공급받던 계란 값의 인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마당 한 구석에 조그마한 닭장을 만들지 않는 한 말입니다.
어릴 적 마당 한쪽에서 기르던 닭장이 항상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닭장 울타리 안에는 작지만 모래사장이 있어서 실컷 모래 목욕을 했고, 닭장 안에는 횟대가 놓여 있어서 날고 싶은 욕망을 한껏 풀어낼 수 있었지요. 그렇게 닭들이 자라고 그 알을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먹어서인지 지금도 계란이나 닭 요리가 썩 즐겁지도 않고 많이 먹히지도 않습니다. 전문가들도 육식을 줄이려면 돼지나 소들이 어떻게 도살 처분되는 그 과정을 체험해보면 된다고 합니다.
가까운 흑석리에 사는 친구네 집 마당에 살던 닭 서너 마리가 떠오릅니다. 암탉 세 마리를 보호하려는 수탉 한 마리가 모이를 주려는 친구의 허벅지를 자꾸 쪼아대서 수탉을 닭장에서 내보냈습니다. 얼마 안지나 암탉 세 마리가 모가지가 비틀려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닭장 밑을 파고 들어온 살쾡이한테 당한 것입니다. 암탉을 지키던 수탉도 없었고, 닭장 밑이 튼튼하지 않기도 해서 그런 참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그 때 닭들의 운명도 안됐지만, 계란 파동이 일어난 지금 생각하니, 그 닭들이 내어 놓은 따뜻한 달걀들이 얼마나 신선하고 귀한 것이었는지 새삼 안타깝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이 자연과 멀어져서 인간끼리 콘크리트 도시에 몰려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현대인들은 무감각하게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돌보라고 맡기신 많은 피조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려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육식 위주로 소비생활을 하다보니, AI 사태나 살충제 계란 파동 같은 것을 겪고 있습니다. 자, 도시 속에서, 아파트의 숲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창세기의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그리스도인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닭장을 조그맣게라도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연에 가까기 가야겠습니다. 닭을 창조해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신선한 계란 한 알도 감사히 생각하며 먹어야겠습니다. 이렇게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만물을 돌보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 글쓴이 김귀한 님은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살림코디네이터로서 대전산성교회 권사입니다. 위의 글은 2017년 9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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